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슬라 Jul 20. 2022

수학과 인생

- 인생과 수학의 공통점과 차이점

전공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수학이 내 성적표의 발목을 잡았었는데 어른이 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공부들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래도 수학이 나와 잘 맞는 과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들, 아이가 어려서 어떤 과목을 못한다고 '얘는 이걸 못하는구나' 하지 마셔요.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답니다!) 학창 시절에는 완벽한 문과형 학생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이가 들어 점점 나의 본래 성격이 뚜렷해지면서 외우는 것보다는 풀어서 답 나오는 과목이 훨씬 대하기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문과생이었던 내가 이과 수학까지 어쨌든 풀게 되었으니 약점이 언제까지 약점이라는 법은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그래도 꽤 긴 시간 수학 선생 노릇을 하면서 수학과 인생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수학에 공식이 있듯 인생도 잘 살기 위한 공식이 있다.


1. 수학에 공식이 있듯 인생에도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원리, 진리가 있다.

- 수학은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과목이지만 이해가 잘 안 되면 '공식'을 외워서 그 공식에 주어진 숫자를 대입하기만 해도 풀 수 있다. 공식을 외우는 것은 문제를 빨리 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식을 가르칠 때 무작정 공식을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 왜 이런 공식이 도출되게 되는지 증명을 통해 설명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모든 선생님의 말은 아마 이럴 것이다. "외워!"


예를 들어, 우리가 방정식을 풀 때 '이항'이라는 것을 한다. 등호(=)를 기준으로 왼쪽이 좌변, 오른쪽이 우변이고, 좌변에서 우변으로, 우변에서 좌변으로 항을 옮기는 것을 이항이라고 하는데 이항 할 때는 항상 부호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이항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등식의 성질'이라는 것 때문인데 양변에 같은 수를 더하거나 빼어도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항을 없애기 위해서 더해진 것을 빼면 다른 변에도 똑같이 그렇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결국 한쪽 변에는 내가 없애려고 했던 항이 사라지고 다른 변에 부호가 바뀐 그 항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풀 때마다 우리가 등식의 성질을 기억하면서 풀 필요는 없다. 왜 이렇게 되는지 이해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바로 공식을 이용해서 풀면 될 일이다.


인생에도 '진리'라는 것이 있다. 삶의 다양성을 넘어선 영역에서 시대를 관통하며 응당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어떤 명제로 정리되는 것이 있다는 얘기이다. 그 명제가 어떻게 도출되었느냐, 수많은 케이스를 통해서 각양각색의 인간들의 삶 속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찾아냄으로 도출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해!' 하며 하나하나 겪어봐야 보통의 인간들은 그제야 '정말 그렇군' 하게 되지만, 한두 번의 시행착오로 그 원리를 공식 삼아서 삶의 문제를 대입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원리는 증명된다


2. 수학의 공식도, 삶의 진리(원리)도 증명되고, 또 증명이 필요하다.

- 공식은 결과이다. 증명의 과정을 거쳐 최후에 남은 명제이다. 수학에 진심인 아이들일수록 꼭 '증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증명과정을 온전히 숙지했다면 조금씩 변형된 문제들도 어지간히 풀어낸다. 그런데 이 증명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기도 싫어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문제가 조금만 변형되어도 당황한다. 아이들을 오래 가르치다 보면 얘가 이걸 이해하고 푸는지, 그냥 기술만 대강 알고 푸는지 너무 뻔하게 보인다. 그런데 '활용 문제'로 넘어가면 이 두 부류의 아이들의 실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삶에도 증명이 필요하지만 수학과는 순서가 반대로 진행된다. 내가 이렇게 살고자 결심했고, 나만의 삶의 원리(가치관)를 정립했다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보여주고 증명해야 한다. 수학을 풀 때 증명 과정을 이해한 아이들이 다양한 변형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해결 팁을 찾아내는 것처럼 내 삶의 원칙대로 살아가면서 말이 아닌 행동, 이벤트성이 아닌 일상성으로 증명할 때 내 말이 힘을 얻는다. 말의 힘을 얻은 데까지 나아갔다면 내 삶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자부심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게감 있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을 것이다. 


같은 유형의 문제도 여러 번, 난이도를 달리하면서 풀어야 한다. 수학도 인생의 문제도.


3. 같은 유형의 문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풀어야 익숙해지듯, 인생사 한 번 겪어본 것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이 단원의 기초 내용이다. 설명을 해 준 후에는 아이들이 문제를 직접 풀어봐야 한다. 수학 문제집을 보면 맨 처음에는 배울 내용에 대한 이론(설명)이 있고 단계별로(난이도) 그 유형에 해당하는 여러 문제들이 나열되어 있다. 하나의 이론을 완전히 숙지하기 위해서는 한두 문제 푸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기초를 알았다면 기본으로, 기본이 되었다면 심화로 넘어가면서 같은 유형의 문제도 난이도를 높여 가며 여러 번 풀어봐야 잊어버리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이해가 안 되면 일단 문제를 풀어보라고. 여러 번 그 내용에 해당하는 문제를 풀다 보면 풀면서 원리를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또 이런 말도 자주 한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알긴 아는데, 알 것 같은데'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러면 나는 '모르는 거야.' 이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아는 것 같은 것' = '모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삶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생 노릇을 오래 하다 보니 여기저기 다양한 연령대의 '제자'라고 할만한 애들이 많다) 성인이 된 제자들도 여럿 있는데, 다양한 삶의 문제들로 고민하면서 내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올 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같은 부분'에서 반복해서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어려서부터 '남과 비교하는 것'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아이는 '이것이 문제네. 이렇게 해봐'라고 조언을 해 주어도 자동적으로 남과 비교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다. 쉽게 사람(타인)에게 기대어 자기 내면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아이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런 상황이 되면 예전과 비슷한 선택을 하고는 다시 괴로워한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들에게 계속 트라이해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또 이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얼른 비교를 멈추고, 스스로 서기 위해 애쓰라고 말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각자의 약점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수학은 집 짓기와 같다. 


4. 수학도 인생도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가야 한다.

- 수학은 정말 정말로 집 짓기와 똑같다. 기초 공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진다. 국영수가 괜히 국영수가 아니다. 오랜 기간 기초부터 다져놓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특히 수학은 완전히 그렇다. 이 단원이 어려워서 대충 하고 넘어가면 다음 단원에서 배운 내용이 할만하더라도 막상 문제를 보면 망연자실하게 된다. 지난 단원에서 배운 내용을 알아야만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배운 것에 하나하나씩 더하면서 어려워지는 과목이 수학이다. 이전에 놓친 부분을 숙지해야만 지금 배우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처음부터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없다. 재벌 3세도 경영 수업이라는 것을 받아야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가는 태도, 가까이 있는 사람과 내 주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수학과 우리 인생이 이렇게나 닮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답이 정확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수학은 명확한 정답, 단 하나의 답이 도출되는 과목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가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인생을 잘 풀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수학은 '논리'만이 존재하는 학문이다. 인과관계가 분명하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하고, 이렇게 해야만 답이 나온다. 그러나 인생에는 '신비'가 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논리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많은 부분 인생에도 인과 관계가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우리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어떤 이는 '운'이라고, 어떤 사람은 '신의 은총'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존재한다. 


인생을 엉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수학을 가까이하면서 나는 적잖이 인생에 대해 깨우친 바가 있다.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일상의 삶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는 멋진 삶을 우리 모두 살아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봄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