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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Sep 15. 2022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 한 때는 무엇보다 찬란했던.

감독 : 도이 노부히로

출연 : 스다 마사키, 아리무라 카스미


간만에 로맨스 영화.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았다. 영어 제목은 <We made beautiful bouquet> 우리말 제목보다는 영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라는 표현 말고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한 신기한 제목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꽃다발 같은 사랑'이란 게 도대체 뭘까 하고 생각했다. 꽃다발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에 주로 선물하는 거니까 그런 상징적인 의미일까? 생각했지만 영어 제목을 보니 이해가 잘 된다.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었다.' 


키누(아리무라 카스미)무기(스다 마사키)는 스물한 살의 대학생들. 현실감각이 뛰어나 일찌감치 취업을 준비하는 그런 스타일들이 아니다. 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하고, 음악과 영화를 사랑한다. 쫓기듯 살면서 돈에 치이는 삶보다는 돈 좀 없어도 즐겁게,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은 청춘들. 둘은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취향과 생각이 너무 잘 통해서 금방 사랑에 빠진다. 물론 영화는 첫 장면부터 두 사람이 헤어진 연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끝난 사이라는 것을 알고 보지만 사랑에 빠지는 그 시간들은 무척 설레고 보는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든다. 키누는 취업을 준비하고, 무기는 그림을 그려 돈벌이를 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하지만 취업의 벽은 높기만 하다. 부모님 잔소리가 힘들다는 키누에게 무기는 그럼 집에서 나와서 나와 함께 살자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뭐든지 함께 하고 행복하기만 한 시간들을 지나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온 두 사람. 처음엔 부모님들이 와서 잔소리며 협박을 하고, 그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이 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진지하게 취업 준비를 하기로 한다. 


 


무기가 먼저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일도 내려놓고 '너(키누)와 함께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그를 보며 키누도 취업을 준비한다. 하지만 먼저 취업이 되는 쪽은 키누. 다행인지 키누는 아르바이트할 때와 비교할 때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 병원에 취직해 원무 업무를 시작하지만 수 없이 떨어진 후 합격한 신생회사의 영업사원이 된 무기의 삶은 이전의 삶과 크게 달라진다. 어차피 일 하기로 한 것,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고 열심히 해서, 키누와 함께 하는 삶이 돈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무기는 굳게 마음먹는다. 키누 역시 일은 하지만 무기의 직장 생활 같지는 않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얼마나 고단한지는 잘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전처럼 같이 만화책을 보며 깔깔대고, 주말에는 공연을 보면서 데이트하고, 단골 빵집의 빵을 나눠 먹으며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키누가 그런 것인지, 일본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은 난장판이 되도록 싸웠을 텐데, 소위 '야사시'라는 말에 참 잘 어울리는 키누다. 서운함을 표현하는 대신 참고 넘어가면서 그에게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포기한다. 무기와 함께 하며 나누던 즐거움이 확 줄었기 때문에 키누는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병원을 그만두고 이벤트 회사로 직장을 옮기기로 한 것.

그런데 키누는 무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결정해 버린다. 무기는 키누가 혼자 결정한 것도 화가 나지만, 좋은 직장 대신 즐겁게 살고 싶다고 직장을 옮긴다는 키누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예전에 함께 나눴던 즐거움의 흔적은 이제 자신에게는 남아 있지도 않은데, 나와 함께 현실을 살아주면 좋으련만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것 같아 한심해 보인다. 


영화는, 차곡차곡 켜켜이 쌓아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늘어지지도 건너뛰지도 않는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제삼자인 나는 무기의 마음도 키누의 마음도 너무나 이해가 된다. 무기는 '인생은 책임이다'라는 부모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책임감 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 무기가 '키누와 함께 하는 삶'을 자신의 목표로 삼은 것은 그녀와의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혼'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 봤을 거라고 믿고 무기는 '생각해 봤어?' 하고 묻지만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아니다'이다. 쭉 함께 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지금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무기와 연애하는 지금도 즐거움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키누의 마음을 다 알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도 저울이 기울지 않는다. 



이 둘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지는 계기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무기와 가깝게 지내는 선배 카이토가 술에 취해 욕조에서 자다가 죽은 것이다. 그런데 카이토의 여자 친구 나나로부터 그가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키누는 무기만큼 슬퍼할 수가 없었다. 무기는 그런 키누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이후로 두 사람을 싸우지도 않고,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 사이가 된다. 만 4년을 꼬박 만났고, 3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이 사랑에도 종착점이 보이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친구의 결혼식장에 그들은 멋지게 차려 입고 커플로 참여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론을 내린 후였다. '오늘 이별을 고하겠노라고'


서로 어떤 말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 막상 헤어지려니 무기는 그러고 싶지 않아 진다. 그는 키누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키누는 정확히 알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을.


"오늘 즐거워서 지금 그런 생각이 드는 그야.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집이 구해지지 않아 헤어진 후에도 3개월을 같이 살지만, 둘의 관계는 돌이켜지지 않는다. 이미 마침표가 찍혀버린 문장이다. 이어서 다른 문장을 쓰는 수밖에 없다. 


다음 해 우연히 같은 카페에서 각자의 연인과 함께 한 채로 마주치지만 두 사람은 아는 체하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서로의 뒷모습을 향해 연인 몰래 손을 흔들 뿐이다. 앞으로도 잘 지내라고.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 취향이 비슷한 것을 넘어서 같은 콘서트 티켓을 사 두고도 가지 못한 상황까지 똑같은 것, 또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 음식점에서 헤어짐을 얘기할 때, 두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앉은 막 연애를 시작하는 풋풋한 커플의 말과 행동이 (두 사람이 신은 운동화까지) 똑같은 것은 너무 인위적이어서 아쉬웠지만, 무기와 키누 두 사람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연애의 기승전결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 공감할만하다. 


사랑의 흥망성쇠. 

마침표가 찍힌 문장.

과거형이 되어버린 아름다움.


결혼식 당일에나 볼 수 있는 부케, 기념일에나 주고받을 꽃다발. 

그러나 꽃다발이 있었던 그날들은 너무나 찬란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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