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년이라고 불러주세요
입사 한 달 반. 동기 하나 없는 사무실에서 나는 매일 혼자서 유령처럼 떠돈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회사에 밝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박하게 쏟아지는 연차와 병원 전화들 사이에서 내 사정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내 진짜 수습 기간은 업무 숙지가 아니라, 엄마의 암세포와 아빠의 섬망 사이에서 내 정신을 붙들고 있는 일이다.
엄마는 유방암 4기다. 암세포가 뼈까지 전이되어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침대에 박제되어 뒤척임 한 번이 간절한 상태. 그런 엄마 곁을 지키는 유일한 보호자는 뇌동맥류를 앓는 아빠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병실의 전언은 늘 비극적이다.
“아빠가 나한테 빨리 죽으래... 나 정말 아빠 때문에 죽을 것 같아.”
30년이다. 아빠의 그 폭력적인 모습은 내 인생 내내 봐왔던 지긋지긋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를 무작정 원망하는 대신,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이 책은 어쩌면 그를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왜 저렇게 고장 난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해 보려는 처절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2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던 아빠의 뇌는 이미 그때부터 조금씩 깎여 나갔을 것이다. 이제는 뇌동맥류까지 얻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조차 흐릿해진 사람. 집에 있으면서도 병원이라 우기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빠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아빠는 지금 엄마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진 말들은 사실 엄마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고장 난 뇌가 내보내는 오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30년 전의 그도, 지금의 그도 결국은 자기 안의 괴물을 다스릴 줄 몰랐던 불쌍한 인간일 뿐이었다고, 하지만 끝나지 않겠지.. 그래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그 지옥 같은 풍경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의 일러바침과 아빠의 헛소리를 통해 재구성된 지옥을 관찰한다. 직접 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지독하지만, 이제는 그 고통을 '원망'이 아닌 '이해'라는 필터로 걸러보려 한다. 아빠를 무작정 피하기만 했던 과거와 엄마가 고통받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죄책감이 항상 가슴 한편에 있었고,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숙제다. 이제는 아빠의 망가진 뇌를 가련하게 여길 수 있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오늘 나는 휴가를 내고 아빠를 집으로 보냈다. 이건 격리가 아니라, 서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 우리 셋 중 누구 하나가 무너지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려는 선택이다.
이건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간병 기록이 아니다.
30년 넘게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라는 한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마침내 나를 그 과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기록이다.
내 나이 서른, 어렸을 때부터 가난과 가족의 많은 비극들로 인하여 일주일에 적어도 몇 번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지금은 그냥 살고 싶지 않다. 우울증은 날이 갈 수 록 심해지고 불면증은 평생의 숙제이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 외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죄책감과 불안함, 그리고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는지 세상도 탓해보고 별짓을 다한다. 살 수 없을 거처럼 고통스럽다.
날 살리려면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