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부대화] 0. 행복한 공부 대화가 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할까요?
자녀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잡히지 않았다고 고민하며 오는 부모님들을 만났을 때.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저는 이렇게 3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첫 번째 단계는 오늘 만난 이 친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자랐을까'입니다. 학령기에 들어섰다고 해서 아이들이 갑자기 공부에 흥미를 보이고 책임을 다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이들은 먼저 영유아기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달성하고 조절하는지, 환경을 어떻게 조율하고 받아들이는지 배우게 됩니다. 안전하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고 조절하도록 도와주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자율성을 획득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짜증 낼 때 불편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스스로 해답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주도성을 키워나가지요. 영유아기 발달 과업의 획득은 학습을 대하는 태도와 근면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신뢰감이 있어야 편안한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으며, 자율성이 있어야 자신이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신나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도성이 있어야 잘 안 풀리는 답답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지요. 만약 오늘 만난 이 친구가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부족해서 불안과 긴장을 높게 느끼고 있다면 부모님의 성향과 자라온 환경의 특성을 통해 지금 이 상태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부모님과 공유하며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아이가 왜 집중을 못하는지, 왜 의욕이 없는지, 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말을 못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자녀를 덜 다그치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아직 길러내지 못한 덕목들을 가르쳐주고, 지지와 격려를 해주기도 좀 더 수월해집니다.
두 번째 단계는 지능의 특성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뇌는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고, 지능검사의 결과는 아이들의 인지기능의 특성뿐만 아니라 학습과 경험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보통 학령전기의 아이들은 기억의 용량이 커지고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필요한 정보에 집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되는데, 이러한 발달의 정도와 속도는 아이들마다 다릅니다. 오늘 만난 이 친구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여 기억을 하기까지의 기본적인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발달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토대로 다양한 상징(수나 글자)을 다루고 귀납적인 추리(물론 아주 비논리적이지만)를 해낼 수 있다면 초등 저학년 친구로서는 적절하게 인지 발달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 친구라면 계획을 세우거나 읽기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거나 수학에서 개념을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아이들의 지능검사를 진행하며 먼저 이런 기본적인 인지기능의 발달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파악합니다.
전반적으로 인지기능의 발달 수준이 파악되면 지능검사에서 드러나는 단어에 대한 지식이나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고 비유적인 표현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는지 등의 언어능력, 시각적 자료나 도형에 대한 이해 정도, 규칙이나 패턴, 수와 양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등 일반 능력을 파악합니다. 이러한 일반 능력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학습과 경험에 의해 많이 좌우됩니다. 이때 아이들이 지능검사의 문항을 대하는 태도와 문제의 정오답을 관찰하여 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집착력, 해결 능력 등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이 친구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할 때 보이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므로 부모님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검사 현장을 통해 저도 재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이 친구에게 효과적인 지지와 격려 방법, 지도 방법들을 떠올리고 가볍게 시도해봅니다. 공부나 학업에 전혀 흥미가 없는 친구라면 저도 검사 장면에서 동기나 의지에 자극을 주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때 부모님들의 마음에 아주 깊이 공감하게 되죠.^^
주의력, 집중력에 영향을 받는 작업기억과 정보를 빠르게 탐색하고 변별하는 처리속도는 인지효율도라고 부릅니다. 언어능력, 추론 능력이 포함된 일반 능력이 인간의 고등 지능을 사용하는 영역이라고 본다면 인지 효율도는 지능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엔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큰 엔진을 가진 차는 한 번에 속도와 힘을 크게 높일 수 있지요. 그러나 작은 엔진을 가진 차라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늘 인지 효율도에 대해 설명하며 덧붙이는 말은 '인지 효율도가 낮다는 것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좀 더 반복해야 하고 좀 더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중등 학습을 통해 기본기를 잘 닦고, 많은 정보과 경험을 갖게 되면 인지 효율도가 아주 높지 않더라도 뇌는 좋은 수준으로 기능을 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의 암기력이 노인보다 좋지만, 노인의 지혜를 젊은이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좀 거친 예이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것은 기질과 경향성입니다. 타고나기를 자극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잔뜩 머금은 채로 태어난 아이들은 단조로운 자극을 버티는데 고통이 따릅니다. 즉 공부를 하기가 더 힘들고 많은 애를 써야 합니다. 정서에 민감하고 다른 사람의 정서도 빠르게 인지하는 아이들은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보단 주인공의 서사가 있는 이야기책에 더 흥미를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질이 모두 타고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극을 좋아하는 아이, 자극보다는 절제가 편한 아이, 사람이 필요한 아이(공부하며 엄마를 수백 번 부르는...), 혼자 사부작 거리 기를 좋아하는 아이(혼자 잘 하지만 고집을 세우면 타협이 어려운...), 끝까지 뭘 하는 걸 너무 힘들어하는 아이(숙제하는 내내 부모가 챙겨야 하는...), 자기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못 참는.. 끝장을 봐야 하는 아이... 이러한 타고난 기질은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다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이 유능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져서 자긍심을 갖게 된다면 좋은 인품과 성격을 가진 아이로 자라게 되지요. 기질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자녀가 자긍심과 유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라온 환경과 발달과업의 달성 수준, 인지기능의 특징, 기질 특성을 통해 아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는데요, 다음번엔 아이들의 지능과 인지발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