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출신 사람들끼리 함께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만약 서울 사람들이 지켜본다면, 대부분 오해하기 십상이다. 저들은 지금 싸우고 있다고.
내 고향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 센 발음과 큰 목소리를, 내가 스스로 불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1학년 시절 전공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지적 때문이었다.
전공 수업의 과제 리포트를 발표하는 날, 난 강의실 앞 연단으로 나가 리포트의 첫 장을 읽어 나가고 있었다.
몇 문장이나 말했을까? 아마도 2-3 문장 정도였을 것이다.
갑자기, 전공 교수님 – 여류 수필가로 더 유명한 교수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 이 내 발표를 중간에 끊어 버리기라도 하듯,
“왜 경상도 사람들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고수하는지 모르겠어. 자만심이야 뭐야. 왜 경상도 어투를 버리지 못하지? 그렇게 경상도에 대한 자부심이 큰 건 오만 아닌가?” 라고, 발표하고 있는 내 말을 덮어 버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힐난하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목도 알지 못하는 죄라도 지은 양, 강의실 학생들 앞에 선 나에게, 내가 받지 않아도 되는 부당한 공격을 해 온 것이다, 그 저명하고 우아한 교수님은.
전공 수업을 듣던 과 동기들과 선배들의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의실 안이 적막해졌다.
강의실 앞에 그대로 서있던 나는, 그들의 눈이 황당함과 약간의 소심한 반항심으로 크게 떠지는 것을 아무 말없이 똑바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강의실 전체가 낯설고, 무엇엔가 언짢아하는 것처럼 공기가 정체되어 있었다.
교수님도 뭔가 강의실 공기가 냉랭해짐을 느꼈는지 황급히 수습의 말을 덧붙인다.
“아니, 이런 공개적인 발표 자리에서는 사투리 말고 표준말을 쓰는 게 더 프로페셔널해 보인다는 거지.”
아, 그 말만은 하지 말지…….
난, 나에 대한 지적은 참을 수 있어도 ‘틀린 것을 맞다’고 우기는 건 참아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원래.
“제가 쓴 단어는 사투리가 아니고 모두 표준 단어였어요.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억양, intonation에 대한 지적이에요, 사투리가 아니라. 그건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난,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발표를 계속했다.
그 전공 수업에서 내가 학점을 잘 받았냐고? 글쎄, 나에겐 만족스럽지 않았어.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 강의가 끝나자마자 선배들과 과 동기들이 나한테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던졌다.
“아니, 경상도 억양을 썼다고 사람 부끄럽게 만들 건 또 뭐야. 이건 좀 부당한 공격 아닌가?” 아, 그래도 이렇게 내 다친 마음을 달래줘 보겠다고 한 마디씩 해주니 속은 좀 덜 쓰려온다.
“괜찮아요. 교수님 컨디션이 오늘 좀 안 좋으신가 보죠, 뭐.” 나는 짐짓 괜찮은 척, 쿨한 척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나에겐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깊게 각인되었다.
두려웠다. 시골 촌뜨기가 서울로 올라와서, 그것도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제일 똑똑한 애들이랑 함께 부대끼며 비교당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하는 것까지 지적당해야 하다니……. 나에겐 서울살이가 참 쉽지 않았었다.
그 이후로 난, 회사 회의 자리에서나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나 또는 사람들과의 대화들에서나 항상 말하기에 신경을 더 썼고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그때부터 시도했던, ‘더 나은 스피킹’을 위해서 노력해 오고 있는 나의 방법 중에 아직까지도 지켜오고 있는 것이 있다.
내 목소리의 톤과 말하는 스피드, 발음의 부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녹음을 따로 해서 반드시 다시 들어보고 고쳐야 할 사항들을 재확인하고 개선하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참으로 노력이란 놈은 정직한 것이다. 말하기에 신경을 쓰니, 말하는 실력이나 재치가 점점 나아져 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평상시 말하는 억양을 매우 낮고 단조롭게, 약간 나른하게, 너무 심한 높낮이를 두지 않고 잔잔한 노래 부르듯이,
문장의 첫 단어를 말할 때, 강하고 높은 억양으로 시작하지 않고, 성대를 과도하게 쥐어짜서 목으로 발성하는 것이 아니라 복부 코어를 이용해서 단전으로부터 소리를 끌어내면,
듣기 편한 목소리로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의견을 주거나 받는 행위들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즐겁게, 웃게 만들어주는 얘기 혹은 힘이 나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도 항상 미리 생각해 놓는 편이다.
그리고 반드시 유머러스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얘기하는 것을 재미있게 들어 주는 것만으로, 대화를 하며 같이 한바탕 하하 호호 함께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17년 전 회사 업무 때문에 대학생 아르바이트 학생의 일손을 잠깐 빌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으로 잠깐 일하러 온 대학생 친구가 나에게,
“말씀을 참 재미있게 잘하시네요.”라고 했다. “그래요?” 하고 난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젊은 친구, 내가 나에 대해 지금에서야 파악한 것을 나를 본지 단 몇 시간 만에 알아채 주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에게 칭찬의 얘기를 해 주었다.
서로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웃음을 찾고,
상대방의 재치를 알아봐 주며 서로 교감하는 자세를,
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치 있게 얘기하고, 다정하게 얘기하고, 천천히, 나지막이 얘기하라. 모든 종류의 대화가 즐겁게 진행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끊임없이 교류하고 교감을 나누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 아닌가?
즐겁고 유쾌하게 명쾌하게 대화를 해 나가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