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동네 카페 여자 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랑에 관해서. 엄밀하게 얘기하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자를 볼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였다.
매일 아침 10시 즈음, 나는 아침운동 겸 동네 산책을 한 후, 집 앞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셔 주어야 하는 나의 이 습관은 너무나 오래된 것이라 지금은 어찌해 봐도 바꿀 수가 없다.
오늘도,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막간을 이용해 사장님과 소소한 담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카페 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들을 대하게 된다는 사장님의 고충, 진상 할아버지 손님의 어쭙잖은 수작, 아주머니들의 과도한 서비스 요구 등을 듣다가, 어찌어찌해서 이야기는 이상형의 남자에 대한 주제로까지 넘어가게 되었다.
이 모든 주제들을 넘나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아줌마들의 토크 실력이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진상 손님에 대한 고민을 카페 사장님의 남편이 잘 들어주시고 상담까지 잘해 주신다는 사장님의 얘기를 듣고,
“네, 그렇죠. 대화가 잘 통해야 대체로 잘 사는 것 같아요. 대화가 중요하죠.”라고 내가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남자 볼 때 어떤 점을 봐요?”라고, 카페 사장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 분은 고맙게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항상 불러 주신다.
짧은 책 1권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감사하게도.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남자는 무. 조. 건. 잘 생겨야 해요. 그리고 스타일이 좋아야 해요. 하하 핫.” 내 대답이 카페 사장님께 큰 재미를 안겨 드렸나 보다. 그렇게 얘기하는 여자 사람은 처음 봤다고, 계속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 가셨다.
“난, 여자들한테 예뻐야 한다고 요구하는 남자들만 봤지, 남자는 무조건 잘 생겨야 한다는 여자분은 처음 봤어.”
나로선 당연한 것인데…….
사장님의 말씀에 오히려 내가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곧이어 난, 내 주장에 대한 나름의 견실한 논지를 펼쳤다. 평소의 지론이다.
“다들, 살다가 싸울 일이 100번 있으면, 잘 생긴 얼굴이라도 보고 3번 정도만 화내고 나머지는 다 참아 주는 거예요. 자다가 얼굴 돌렸을 때, 아, 이 잘생긴 남자가 내 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참아주고 산다고 하더라고요.”
카페 사장님은 이 말도 재미있다고 계속 웃으셨다. 뭐, 오전부터 카페 사장님을 웃게 해 드릴 수 있어 나도 기쁘긴 하다.
“근데, 능력을 봐야 돼, 남자는. 내가 살아보니까.” “여자가 벌면 되죠, 뭐.” “아니, 그 능력 말고 밤에......” “앗, 흠흠…… (발그레). 아, 네에......” 역시 아줌마들 사이의 대화는 화끈해서 좋다. 나보다 연장자인 카페 사장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오전의 유쾌하고 짧은 대화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며 머릿속으로 오늘의 에피소드를 글로 한번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제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이 죽일 놈의 사랑은 도대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나? 등등
‘사랑에 대한 고찰’이라고 제목을 짓고 글을 쓰려고 보니, ‘나’라는 사람, 사실 사랑에 대해 너무나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드러나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2주일 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살아가는 얘기를 했을 때에도 사랑에 관한 대화를 잠깐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그녀의 애정관 얘기를 한참 듣다가, '사랑이 뭐,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잖아'라고 내가 시니컬하게 얘기했다. 그 친구는, 내가 12년 전부터 자주 쓰던 말이라며,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난, 사실 그 반대를 말하고 싶어 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사랑 따위는 필요 없다고 시니컬하게 굴기 일쑤였다. 어떠한 종류의 감정에 대해서도 시니컬한 게 가장 편하기는 했다. 가장 상처를 덜 받는 포장이었으니까.
여자나 남자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 전 인격이 붕괴되는 경우가 심한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남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고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거나 순응을 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타인의 감정에도 쉽게 그리고 아주 깊게 공감을 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게 되면, 항상 내가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습관, 행동 철칙 등이 상대방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짧고 시시했던, 별 볼일 없었던, 그리고 그마저도 많지 않았던 연애 (나처럼 수줍음 많은 성격에 그나마 있었던 것이 기적)가 아무런 감동 없이 끝나고 나면, 큰 상처 없이 끝났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나의 원래 루틴으로 돌아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오래전 언젠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솔직히 얘기했던 것 같다.
한 번도 남자에게서 (이성 간의 감정에서) ‘영혼이 충만한 사랑’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아, 그렇다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영혼이 충만한 사랑’은, 생명을 내 배에 품고 생명을 낳았던 순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고,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사랑의 형태는 짝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라고도 말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현실의 남자들보다는 허구의 인물들에 대한 짝사랑을 하는 것이 좀 더 마음 편해서 좋았다. 유치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항상 허구의 인물, 예를 들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김혜린 작가의 ‘불의 검’ 주인공 ‘가라한’ 같은 인물을 흠모하고 추앙하고 동경하고 꿈꿔 왔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성향의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참으로 순진하게도.
이 대목에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탄식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아……. 이 아줌마,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만화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어. 대책 없이 감성 충만하시네, 생각보다.’
그렇다. 나는 대책 없는 로맨티시스트이자 몽상가이다.
셜록 홈즈나 가라한 같은 인물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사랑과 흠모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이다, 여자들에게.
그에 비하면 대부분의 현실세계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다 그런 건 절대 아니겠지만,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의지는 약해 빠졌고, 말에 품격이 없는 경우가 많고, 고난이 닥쳐오면 쉽게 좌절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취향은 저급하고 습관은 불결하며 몸의 움직임은 우아하지 않으며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오늘만 이런 무드이니 조금 양해해 주시길) 글쓴이의 마음이 오늘 유독 꼬였나 보다, 이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그에 비하면, 허구의 인물 ‘셜록 홈즈’나 ‘가라한’은 어떤가? 생각이 바르고, 총명하고, 의지는 굳건하며, 마음속에 대의를 품고 있으며, 가슴속에 정열이 있고, 고난 앞에서 힘들어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약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면, 자신을 유혹하는 여자들에게 단호히 철벽 치는 사람…….
이렇게 써놓고 보니, 현실에서 이런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안타깝지만 매우 낮다고 보아야겠다.
여하튼 이런 로맨틱한 소망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살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건 아니니, 계속 나만의 소망으로 소중히 남겨 두어야겠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나만의 공상이 너무 길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를 얘기해 볼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대개 남녀 간의 사랑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애정이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나, 그 반면 연애 초반에 가졌던 두근거림이나 설렘 같은 감정들은 희미해지게 된다.
대신 그 자리에, 정, 의리, 동지애 그리고 전우애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오랫동안 함께 하다 보면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사소한 불쾌함의 축적’이라고 표현한, 그런 사소하지만 불편한 감정들이 남녀 사이에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세상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애틋하게 여기고 안쓰럽게 여기는 자비심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낳아 기르고 애쓰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물 사이에 모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남녀 간의 감정에 한정된 정의로 사용한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매우 슬퍼할 것 같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너무 축소되는 느낌마저 든다.
상대가 계속 바뀔 여지가 있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되는 사랑’보다는,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내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난 더 좋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성애가 그런 절대적인 사랑의 한 예가 아닐까 싶다.
꼭 ‘나’이어야만 가능한 사랑이니까.
단언컨대,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가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트렸을 때의 그 영혼 충만한 감동과 그 감사함을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몸에 생명을 품어 본 자들만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더 깊게 배려하고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헌신과 희생을 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몸속에 절대 생명을 품을 수 없을 것이다.
상호보완적이고 절대적이며 변치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하고 희망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내 사랑은 크고 넓다. 단, ‘호불호’가 매우 강할 뿐.
마지막으로, 어느 소설에서 읽은 재미난 문구를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여자 없는 남자는 물 없는 물고기 같고, 남자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 같다
무슨 소리인지 해석이 가능하실지? 남자에게는 여자가 꼭 필요하지만,
여자에게는 남자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런 것 같기도? ^^; 웃자고 한 이야기이니 남성분들은 화내지 않기로 해요,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