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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Dec 19. 2016

꺾이지 마라

  동네에 새로 단장한 어린이 놀이터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나온 어른들이 꽤 많았다. 


  한쪽 구석에서 아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서너 살쯤 보이는 노랑 머리 딸 손을 잡고 거니는 머리숱이 별로 없는 백인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미군 부대가 있는 후암동이어서 외국 사람 보기는 어렵지 않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앞다퉈 노랑 머리 여자아이에게 예쁘다고 하자 머리숱 별로 없는 백인은 기분이 좋은 듯 아이에게 “하이, 해야지” 하며 말했다.

주간경향 1072호 삽화

  다음 날 그 놀이터. 


  초등학교 삼사 학년쯤으로 보이는 동남아 혼혈 아이가 혼자 논다. 


  동남아 혼혈 아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놀아보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끼워주지 않는다. 


  그러다 자꾸 부딪힌다. 


  남자아이 서넛이 때릴 듯이 다가가는데도 혼혈 아이는 지지 않고 맞섰다.


  다음 날 또 그 놀이터. 


  이번에도 그 동남아 혼혈 아이가 보였다. 


  어제 그렇게 따돌림을 당해서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나왔다. 


  그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동남아 혼혈 아이는 아이들 속에 섞여 놀아보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끼워주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풍경이다. 


  그다음 날도 동남아 혼혈 아이는 또 보였다. 


  녀석, 끈기 하난 알아줄 만하다. 


  웬만해선 꺾이지 않을 태세다. 


  그래, 꺾이지 마라. 

  

  언제부터인가 그 동남아 혼혈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포기했을까? 


  왠지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나 꿋꿋이 놀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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