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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pr 25. 2018

만화가가 인정하는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와 오세영

遥かな町へ ⓒ  小学館(쇼가쿠칸) / 오세영 ⓒ 청년사

  만화가가 인정하는 만화가? 


  만화가들은 제 그림에 대한 고집 때문인지 대체로 자존심이 세다. 


  그러므로 만화가들이 인정하는 만화가란 그 분야에서만큼은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ー)는 유럽에서 더 알아주는 만화가로 유럽만화계는 시간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형식인 서사성과 문학으로서 일상성에 찬사를 보냈다. 


  오세영은 한국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라 평가받는다.  


  다니구치 지로와 오세영을 단순 견주기는 그렇다. 


  다니구치 지로 작품이 한가한 도시 같다면 오세영 작품은 구수한 된장 맛 나는 시골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같은 대목을 찾아본다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사실주의 만화가이고, 사물을 세심하게 나타내며, 보다 보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프랑스가 사랑했던 작가     


  건축사 나카하라 히로시는 출장지에서 집에 가는 기차를 타는데 기차는 엉뚱하게도 고향으로 간다. 


  그는 어머니 위패가 있는 절로 가는데 거기에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데 이럴 수가! 


  깨어보니 몸이 열네 살 때로 돌아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신만은 마흔여덟 그대로였다. 


  미리 경험한 나이 덕분인지 히로시는 모든 곳에서 돋보인다. 


  속으로만 좋아했었던 여자애도 자신을 좋아한다.


  히로시는 차츰 열네 살을 마음에 들어 하는데 이런 그에게 어두운 기억 하나가 있다. 


  그해 8월 31일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그 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 마흔여덟이란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그런 앞날을 아는 히로시는 과거를 바꾸려 역으로 나가 아버지를 기다린다.     


  1997년 발표된 《열네 살》(원제·머나먼 고향遥かな町へ)


  짜임새가 탄탄한 이 작품은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하는 후회 하나쯤 안고 사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하게 해준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오른 엄홍길이 《신들의 봉우리神々の山嶺》를 보고 한 말이다. 


  초대를 받았으니 덕담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입에 발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그림이 뛰어나다.     


  돗토리 현에서 양복 재단사 아들로 태어난 다니구치 지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에서 직장을 다닌다. 


  1969년 도쿄로 올라와 만화가 가미무라 가즈오(上村 一夫, 1940-1986)와 이시카와 큐타(石川 球太, 1940-) 보조를 하면서 만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다니구치 지로는 프랑스와 인연이 깊다. 

ⓒ 2018 만화그리는목각인형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가가 뫼비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SF 그래픽노블 대가 장 지로(Jean Giraud)이고, 1992년 《걷는 사람歩くひと》이 프랑스에 소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3년 제3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열네 살》이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제32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신들의 봉우리》가 최우수작화상을, 2011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2014년에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 시리즈 한 작품인 《천년의 날개, 백년의 꿈千年の翼, 百年の夢》을 선보였다. 


  그만큼 프랑스가 사랑했던 작가라 할 수 있다.     

ⓒ 2018 만화그리는목각인형


  죽을 때까지 그렇게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다던 다니구치 지로는 예순아홉 나이로 펜을 놓고 영원히 잠들었다.

ⓒ 2018 만화그리는목각인형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FIBD)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앙굴렘(Angoulême)에서 해마다 1월 말에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2018년 45주년)와 영향력이 있는 국제만화페스티벌로 전 세계 만화정보 70%가 모인다. 


  나흘에 걸쳐 열리는 이 잔치에 20만이 넘는 사람이 찾아오며 토론회와 심포지엄, 기업거래도 이루어진다.    

     

  우리네 얼굴을 그리는 작가   


  우리네 얼굴을 맛깔나게 그린 작가 오세영. 


  1972년 오명(1942-)문하로 만화계에 들어오지만 이른바 공장식 만화창작에 회의를 느껴 삽화가로만 살았다. 


  그런 그를 만화계에 알린 작품이 <주간만화>에 연재했던 ‘인생극장 시리즈’와 ‘월북 작가 단편 순례’이다.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이란 부제가 붙은 20세기 초중반 생활상을 알차게 나타낸 작가 이름과 같은 작품 《오세영》은 단편 문학작품 열아홉 편을 담아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 열넷 가운데 월북 작가들도 많은데 이들을 펜과 붓으로 살려냈다.  

ⓒ 2018 만화그리는목각인형

  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낸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는 한 도시 빈민을 초등학교 아이 눈으로 말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일기는 딸이 그린 그림일기를 보면서 그렸다고 한다.


  2007년 추석을 맞이해 인사차 들른 박지성에게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오세영이 만화로 만든 《토지》를 선물했다.  


  《토지》 1부가 만화로 나왔을 때 작가 이름은 아래쪽에 작게, 원작자 이름은 위쪽에 크게 들어갔다. 


  그러자 박경리 선생이 원작자는 그저 원작자일 뿐인데 마치 자신이 이 책을 만든 것처럼 해놓았다며 출판사를 나무랐다고 한다. 


  오세영은 스물다섯 권이나 되는 원작을 서른 번씩 읽어가며 소설 속 공간을 꼼꼼하게 설계했다. 


  소설 무대가 되는 지역을 찾아갔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생활상을 나타내려 수많은 자료를 모았다.   

ⓒ 2018 만화그리는목각인형

 

  그럴 만도 하겠다. 


  500-600이나 되는 사람 생김새와 성격을 하나하나 헤아렸다고 하니. 


  애초 출판사에서는 《토지》를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아동학습만화로 기획했는데 이 작품 가치를 아는 오세영은 불리한 조건임에도 계약을 했다.     

  다니구치 지로와 오세영. 


  안타깝지만 두 만화가 새로운 작품은 더는 볼 수가 없다. 


  문학비평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하늘나라는 다만 거대한 도서관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 속에 푹 빠져 지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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