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May 23. 2018

읽을 필요가 없는 책

《곤(Gon)》

  꽤 오래 앞서 독특한 만화 작품 하나를 만났다.


  격주로 나오는 만화잡지였는데 무심히 뒤적이다 펭귄 떼가 양쪽 면을 가득 메운 그림에 눈길이 꽂혔다.

ⓒ 田中 政志

  만화는 맞는데 만화라고 해야 할지, 동물 백과사전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렸다.

 

  더구나 이 만화에는 만화에 마땅히 나오는 말풍선이 없다.


  말풍선이 없는 만화.


  설명하는 그 어떤 글도 없는 만화.


  그러니 읽을 필요가 없이 보기만 하면 된다.

ⓒ 講談社

  작가 다나카 마사시(田中 政志, 1962-)는 일부러 말풍선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독자들 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림을 사진처럼 잘 그린다고 해서 그 작품이 최고는 아니다.


  잘 그린 그림과 잘 나타낸 그림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오직 펜과 붓만으로 동물들 표정까지 잘 나타냈다.


  《곤》 첫 장면에는 연어를 잡는 동료를 쫓아내고 혼자서 차지하려는 욕심 많은 곰이 나온다.


  그렇게 잡은 연어를 막 먹으려는데 누군가 건드린다.


  돌아보니 어린 티라사우루스 같은 조그마한 녀석이 침을 흘리며 서 있다.


  ‘곤’이다.


  끝내 곰은 연어를 단 한 마리도 먹지 못한다.


  곤은 식사 후 곰 배 위에서 늘어지게 잠까지 잔다.


  이렇듯 곤은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동물도 마음 쓰지 않는, 한마디로 무법자에다 악동이다.


  한데 그런 행동에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이 앙증맞고 거침없는 녀석은 인기가 대단해서 일본 남코(namco)사에서 만든 아케이드 대전 게임 ‘철권(Tekken)’에도 나와 게임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알다시피 한국 둘레에는 힘이 센 나라가 몰려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 90%가 국경이 맞닿은 나라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가 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곤은 작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못하지 않은가.      


  만화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깨버린 작품 《곤》.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만나는 것도 책을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수상은 만화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