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May 30. 2018

돈은 언제나 옳다

《지옥의 링》

  “The Money Is Always Right!(돈은 언제나 옳다!)”   

  

  만화영화 <스펀지밥>에서 집게 사장이 한 말인데 자본주의를 이처럼 잘 나타낸 말이 있을까?


  우리는 욕망에 흔들린다. 


  그래서 돈 앞에서는 거의 굽실대며, 돈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은 지위를 가진다. 


  우리가 죽도록 공부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다 돈 때문이다. 


  이런 돈 앞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만화계에서 1980년대는 이현세(1956-) 시대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사회 주류층에 편입될 수 없는 사람들 울부짖음이 이현세 작품에 한결같이 흐른 주제였다.


  이현세 만화에는 오혜성과 마동탁이라는 맞수가 있지만, 《지옥의 링》이란 작품에선 한층 다양한 맞수가 나온다. 

ⓒ 이현세

  혜성과 국상, 엄지와 미애, 동탁과 한수, 노 관장과 채 관장이 그들이다.      


  《지옥의 링》은 내가 박원빈(1956-) 선생 문하에 있을 때 선생이 이현세 화실에서 가지고 왔다며 1, 2 두 권을 책상 위에 두었다. 


  그때 선생은 이현세 원고를 해주며 생활을 해나갔는데 《해왕도의 비극》, 《억세게 재수 없는 녀석들》이 그것이었다. 


  《지옥의 링》은 펜터치가 그동안 봐왔던 방식과 달랐다. 


  펜선을 여러 번 그어 만든 이 방식은 그 뒤로 야구만화 《제왕》에까지 이어졌다.     

  

  지방 어느 보육원에서 자란 혜성과 엄지는 서로 남다른 정을 나눈다. 


  그러다 엄지가 양부모를 만나 보육원을 떠나면서 소식이 끊어진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혜성은 서울에서 엄지를 찾아내지만, 그 옛날 순수했던 엄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돈. 


  몸뚱이 하나로 돈을 빨리 버는 방법은 뭘까? 


  혜성은 세계 챔피언을 배출했다는 노세체육관 노 관장을 찾아간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많은 대전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권투에 소질은 없었지만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는 맷집으로 버틴다.


  엄지는 재벌 2세들을 오가며 철저하게 성공만을 꿈꾼다. 

동탁과 엄지 ⓒ 이현세

  화성그룹 외동딸 미애는 그런 엄지가 못마땅하다. 


  그럴수록 엄지는 반드시 높은 곳에 올라 미애처럼 자신을 깔보는 사람들을 눌러 주리라 마음먹는다.


  엄지는 돈을 좇는다. 


  혜성도 돈을 좇지만 그건 엄지 때문이다.  


  한국 최대 재벌 오강그룹 후계자인 마동탁은 지고는 못 사는 성미이다. 


  학창시절부터 늘 자신을 앞서 왔던 남현그룹 한수가 그에겐 맞수이다. 


  그 한수가 엄지를 좋아하자 동탁은 엄지에게 다가간다. 


  그에겐 사랑도 경쟁이었다.


  노 관장이 열심히 선수를 발굴해 놓으면 대왕체육관 채 관장은 그들을 빼내 챔피언 감투를 씌어놓고 단물을 빼먹는다. 


  현실에서도 이런 이들은 널려있다.

하국상 ⓒ 이현세

  혜성에게 맞수는 하국상으로 둘은 같이 노 관장에게서 권투를 배웠다. 


  혜성과 달리 국상은 권투에 소질이 뛰어나다. 


  그 둘이 맞붙는다. 


  하국상에게 있어 재기전이기도 한 이 경기에서 국상은 예전 실력을 선보이며 혜성을 몰아붙인다.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뭘 바라지 않고 혜성에게 다 바치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노 관장도 챔피언을 키운 관장소리 한번 듣고 싶었다며 그렇게 욕망이라는 괴물에게 지고 만다. 

노 관장 ⓒ 이현세

  노 관장을 배신한 선수들처럼 되지는 않겠다고 약속한 혜성도 그토록 경멸하던 돈 앞에서 흔들린다. 


  그러며 엄지를 이해하게 된다. 


  돈이란 이렇듯 무섭다.


  끝내 엄지는 그토록 바라던 재벌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버림받는다. 


  혜성도 마지막 한고비를 넘지 못한다. 


  혜성은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죽고 싶도록 심한 고통을 느꼈다며 링은 지옥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걸 왜 한다고 덤볐느냐며 울부짖는 엄지. 


  엄지가 잡으려 안달했던 욕망은 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혜성까지 잃게 했다. 


  ‘메추라기가 산속에 둥지를 틀어도 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탐해도 배밖에 못 채운다.’


  《장자(莊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구절로 욕심을 부려봐야 얻는 것은 결국 그뿐이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욕심이란 메추라기와 두더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엄지가 처음부터 스스로에게 맞는 행복만 추구했더라면 좋은 사람들과 행복을 누렸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럼 여기서 살펴보자. 


  혜성이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엄지를 데려올 수 있었을까? 


  혜성이 아무리 많은 대전료를 받는다 해도 재벌가에는 어림도 없다. 


  혜성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다.       


  《지옥의 링》 글 작가는 이현세를 유명작가로 올려놓은 《공포의 외인구단》을 쓴 김민기(1954-)이다. 


  둘은 《공포의 외인구단》 저작권과 수익분배 문제로 법적소송까지 벌였다.  

ⓒ 만화그리는목각인형

  돈은 언제나 옳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기차. 


  나는 또는 내 자식은 그 기차에 타지 않았으면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쉽지 않다. 


  그저 사고 없이 무사히 내리기만 바랄 뿐이다.



  ·동탁과 엄지 그림은 작품 내용을 잘 전달하려고 색을 입혔습니다.


  작가 저작권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읽을 필요가 없는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