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문하생 시절 일본 만화책을 구하러 자주 갔던 명동 외국 서적 골목.
일본 만화는 배경이 꼼꼼해 만화가 문하생이라면 꼭 있어야 했다.
일본 만화책이 몇 권 있느냐가 실력을 말해주는 잣대가 되기도 했었으니.
문하생이 받는 돈이라야 만화 원고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한 푼도 없었다.
만화 원고를 했다 하더라도 잘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또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본 만화책값은 꽤 부담됐었다.
만화 원고로 쓰는 하얀 도화지와 펜촉 한 통 그리고 제도용 잉크.
여기에 일본 만화책 몇 권까지 더해지면 그 풍족함이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불렀고 뿌듯했다.
하루는 일본 만화책을 고르는데 여자 얼굴이 큼지막하게 있는 잡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에 끌리듯 만화책 사려던 돈을 그 잡지 사는 데 썼다.
그리고 그 잡지에 나오는 여자 얼굴을 그려 좋아하던 여자에게 수줍게 내밀었던 기억.
그때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뚜렷하다.
아, 그리고 내가 책을 살 때마다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시던 내 아버지도.
만나고 싶다.
그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