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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ug 26. 2021

4월 이야기

카레라이스

  어릴 적부터 스물 언저리까지 바다 마을에 살았는데 바다가 코앞이다 보니 생선이 밥상에 자주 올라왔다.

  우리 집 옆집 건너 옆집이 고깃배 선장 아저씨 집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그물에 딸려온 이름 모를 잡고기를 대야에 담아서 나눠주었다.


  어머니는 그걸로 조림이나 매운탕을 해서 밥상에 올리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동네에 다른 지역에서 온, 갓 결혼한 젊은 여자가 이사 왔다.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아이들하고 친해지면 동네 사람들과도 빨리 가까워지는데 그 때문인지 나와 친구 셋을 집으로 불렀다.


  새로 도배해서 깔끔한 벽지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장판,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인 방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카레 먹어본 적 있느냐는 젊은 여자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진한 향신료 냄새가 풍겼는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코를 막았다.


  초대받았는데 가벼이 행동할 수가 없어 나는 꾹 참았다.


  그렇다고 그 냄새가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만큼 낯선 냄새였다.


  밥상에 김치와 함께 진한 누런색 카레가 접시에 담긴 밥에 부어져 나왔다.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던 친구들은 한 수저 들더니 이내 못 먹겠다고 수저를 내려놨다.


  돼지고기 때문에 난 수저를 내려놓지 않고 먹었지만, 끝까지 다 먹지는 못했다.


  “처음 먹어봐서 그래. 너네 이거 먹다 보면 다시 먹고 싶어진다.”


  먹지도 않은 음식 앞에서 어색함이란…


  젊은 여자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이사를 했다.


  동네 사람들은 비릿한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가 카레를 먹지 않아 서운함에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오갱끼데스까(잘 지내시나요)?”


  이 대사 한마디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 <러브레터>.


  이와이 슈운지(岩井 俊二, 1963-) 감독 작품인데 난 그가 만든 <4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4월 이야기><러브레터>만 사길 원했던 영화사 대표에게 일본 쪽 요구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포스트맨 블루스>와 묶음으로 들여온 영화이기도 하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홋카이도에 사는 여고생 우즈키(마츠 다카코)는 고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선배가 도쿄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때부터 우즈키는 그와 같은 학교를 가려 열심히 공부해 같은 학교에 들어간다.


  벚꽃 계절인 4월, 도쿄로 올라온 우즈키는 혼자서 살아갈 준비를 한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우즈키는 이사 왔다며 앞집에 작은 선물을 돌린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이사 왔다고 떡을 돌려도 인터폰으로 문 앞에 두고 가라는 말을 듣는 세상.


  아니 선물 돌릴 생각도 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도시는 외롭다.


  우즈키가 자취생활을 하며 만든 첫 번째 음식은 카레다.


  우즈키는 앞집 여자와 친해지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넉넉히 카레라이스를 만들었지만 쓸쓸히 혼밥을 한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이 영화는 첫사랑 이야기이자 1인 가구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2020년 1인 가구 수는 617만 가구로 100명 가운데 12명꼴로 1인 생활을 하고 있고 앞으로 5년간 해마다 15만 가구씩 늘어난다고 한다.


  혼자 먹는 밥은 잘 차려서 먹기보다 때우듯이 먹게 된다.


  자취하는 사람들은 밥을 잘 안 해 먹는다.


  음식이 생각나면 배달 어플로 주문해 먹기에 부엌은 깨끗하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낯선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우즈키는 동네 서점에 자주 들른다.


  그 서점에서 짝사랑이던 야마자키(다나베 세이치) 선배가 알바를 하고 있기 때문인데, 선배와 만남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비 오는 날, 서점에 들른 우즈키는 야마자키 선배가 있자 기쁨에 들뜨지만 선배는 우즈키를 알아보지 못한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우즈키가 그토록 그리던 선배를 만나고 그 들뜬 마음에 망가진 빨간색 우산을 쓰고 기뻐하는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사랑스럽다.


  우즈키와 그 선배가 좋은 사랑을 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도 않았으면 한다.

ⓒ 조이앤컨텐츠그룹

  이 영화에서 풋풋함이 한가득 묻어났던 마츠 다카코는 2014년에 나온 영화 <작은 집>에서는 묘한 관능미를 풍긴다.


  이 영화는 내게 봄처럼 오고 카레를 먹고 싶게 만든다.


  4월이면 이 영화를 찾아서 보고 즉석 카레보다 정성들여 만든 카레를 한 네 번쯤 먹고 벚꽃엔딩 노래를 들으면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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