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독서
시골집 방마다 있던 책장에 단행본은 몇 권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 문학전집 몇십 권이 들어왔다.
조선왕조오백년, 왕비 열전, 제3공화국…. 이런 제목의 전집도 있었다.
본인이 읽기 위해서였는지, 자식이 읽기를 바라서 구입했는지, 지인의 부탁이었는지, 영업사원의 수완이었는지는 모른다.
분명 아버지가 전부 읽지는 않았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펼쳐 봤을 때 완전 새 책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 책상에 읽는 중인지 어떤지 모를 책 한 두 권이 항상 있었다.
방 정리를 하다 보면 뭔가의 받침 역할을 하는 두꺼운 책도 몇 권 있었다.
촌에서는 드물게 신문을 구독했다.
그 시절 언론의 양대 산맥이었던 조선, 동아 중 조선일보였다.
집배원이 배달해 주는 우편물이었다.
읍내 신문 배달국에서 직접 배달이 안 되는 시골이라서 우편으로 발송해 줬다.
방바닥에 신문을 넓게 펴 놓고 허리를 굽혀 꼼꼼히 읽는 아버지 모습이 익숙했다.
등쿠션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한쪽 발을 다른 쪽 무릎에 얹고 작게 접은 신문을 보던 모습 또한 자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문이 한 부였는데 어느 날부터 농민신문이 같이 배달되었다.
언제부터 신문 구독이 중단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돋보기를 쓰고도 읽기가 힘들어졌을 때라고 추측할 뿐이다.
어쩌면 스카이 라이프를 설치하고 다양한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게 된 뒤였을 수도 있다.
장식품이었을지 모르지만, 책장에 책이 제법 많았다.
아버지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지만, 책은 가까이 두었다.
아버지가 독서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은데 뭔가를 항상 읽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아버지는 읽는 남자였다.
년 초가 되면 책력을 사서 토정비결을 봐줬다. 사주도 어느 정도 풀어냈다.
관광지를 가면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보는 아버지였다.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학력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확실하게 모르는데, 아버지는 뭐든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 최종학력조차 모르고 있었구나!
특별히 관심을 두는 분야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관심만큼만 나도 관심을 되돌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 세워진 관계를 재설정하기가 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자식은 나이가 아흔이 되어도 자식이고, 나이 어린 동생은 환갑이 되어도 어리다.
부모는 자식이 성장해서 어른이라고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자식도 부모는 그냥 항상 부모일 뿐 늙어가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은 아주 늦게 온다.
형이나 언니는 동생이 자라서 같이 상의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고 알아보기 어렵다.
나 또한 아버지는 항상 똑같은 아버지였다.
돌아가시고 10여 년이 지난 이제야 관계를 되돌아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