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차이콥스키 <1812 서곡 op. 49>
책 읽기 모임을 함께 하던 선배 한 분이 안타깝게 소천했다.
어느 봄날, 먼저 떠난 그 선배와 친했던 다른 선배와 성묘를 갔다. 성묘를 마치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간단히 싸 온 음식과 음료를 펼쳐놓았다. 선배와 앉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는 “그랬구나, 그런 사정이 있었어.”라면 공감해 주며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그때 어릴 적 울타리 아까시나무, 산길의 아까시나무 이야기를 했었다.
그 뒤로 아카시아가 필 때면 선배는 “임윤희, 임윤희! 아유, 아카시아만 보면 윤희 씨 생각이 나.” 하면서 살짝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해줬다.
그 선배가 지금 암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작년 아카시아가 필 때 역시 전화가 왔다.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묻고 일상 이야기를 풀어놓는 끝에 선배가 말했다.
“자꾸 희망이 생겨. 아들 결혼하기까지만 했는데, 딸이 결혼하기까지만 했는데 이젠 손주만 볼 수 있기를….” 하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무슨 그런 말을! 손주가 결혼하는 것까지 볼 거예요!”라며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올해도 공원을 산책하는데 아카시아꽃이 만개했다며 연락을 주었다. 예쁜 손주가 태어나 할머니가 되었다는 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먼저 결혼한 아들은 손녀를, 뒤에 결혼한 딸은 손자를 안겨주었다.
꼭 싸움에 이겨서 몇십 년이고 아카시아가 필 때마다 연락해 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1812 서곡 op.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