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의 아카시아

헤르만 네케 <크시코스 포스트, 우편 마차>

by 일신우일신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실력이나 적성을 고려하기보다 환상에 젖어 고른 전공이었다.

7-8년 전에 우주로 보낸 보이저 위성이 보낸 관측 자료가 도착했다는 뉴스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멋지다!"

그 순간 전공을 정했다. 고1학년이었다.


어찌어찌 입학은 했지만, 고등학교와 너무 다른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중학교 때 부터 역사학과 교수를 꿈꾸던 문과 성향이 강한 내가 이과를 그것도 수학과 물리가 가장 필요한 천문학과에 들어갔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럭저럭 1~2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겉도는 처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무척 소심한 성격이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대학 입학이었다. 첫째 오빠 집에서 등하교하는 것도 그다지 편한 일은 아니었다.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전 강의만 있던 어느 날 학교 정문에서 무작정 시외버스를 탔다.

엄마를 뿌렸던 강을 따라 운영하는 버스였다. 한 번쯤 가보고 싶기도 했다.

곧게 뻗은 도로가 생긴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운행했다.

평일 낮이다 보니 승객은 맨 뒤 좌석에 앉은 나뿐이었다.

처음 해보는 즉흥 여행이라 그런지 살짝 겁도 났고 혼자만 타고 있는 어색함과 설렘인지, 긴장감인지 사라지지 않았다.


버스가 한참 산을 오를 때 열린 차창으로 아카시아 향이 들어왔다.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었고, 그제야 창밖 풍경을 쳐다봤다.

산에 하얀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산 너머 도시에 도착해서 유적지를 돌아봤는지, 시내를 돌아다녔는지…. 당최 뭘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갔었다는 것, 그리고 차창으로 들어오던 아카시아 향만 기억할 뿐이다.

지금도 가끔 곧게 뻗은 길을 지나갈 때면 산 쪽을 바라보면 갓 20살 되어 처음 가본 즉흥 여행과 아카시아 향이 떠오른다.

내가 5월쯤 버스를 타고 달릴 때 아카시아 향이 창으로 들어왔듯이

5월에 산길을 우편 마차가 달린다면 꽃향기가 뒤에 따라갈 것 같다.


-헤르만 네케 <크시코스 포스트, 우편 마차>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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