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여섯 명을 제치고
장손녀를 가장 사랑했던
시대를 잘못 타고난 외조부
창 너머 콧줄을 드리운 노년의 남성이
나의 외조부라는 것을
깨닫는 동안
핼쑥한 노인은
마스크 안이 눈물로 흠뻑 젖은
창 밖 여성을
끔벅
끔벅
쳐다봤다
거나한 목소리로 최! 고! 은을 외치며
손수 지은 장손녀의 이름을
퍽 자랑스러워했던
근면한 유전암호를 물려준 당신은
늘 구멍난 일바지를 고집하시면서
여름에는 밭에서 가꾼 수박을 반통 갈랐고
가을에는 잘 익은 홍시 씨를 발라주었는데
세 번째 요양원을 찾아갔을 때
엄마는 구태여 외조부에게
당신의 장녀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딸도 이제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침묵이 그 어떤 날선 굉음보다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