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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베키오 다리와 베키오 궁

by 박경화

피렌체-베키오 다리와 베키오 궁


1. 어엿한 예술가, 거리의 악사들


어둑해 지자 ‘산 로렌초 성당’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걷다가 길거리 적당한 곳에서 쉬는 것은 어딜 가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밤이 되면 거리에는 예술가들이 나타났다. 거리 곳곳에서 들리는 음악도 역시 당연한 일상이었다. 자연스럽게 밤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잠시 발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 분위기에 합류해 감상을 했다.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들만 길거리 공연을 할 수 있어서인지 질이 높았다.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은 시간과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하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연주를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마술을 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산로렌초성당.jpg 산 로렌초 성당앞, 저녁
길연주.jpg 광장에서의 공연
회전목마.jpg 회전목마가 있는 광장


남성 목소리처럼 크고 굵직한 음성의 노래 소리를 따라 가까이 가보았다. 초록색 원피스와 하이힐 차림의 길고 검은 머리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식 무대는 아니지만 풍부한 성량으로 뮤지컬을 하듯 열의를 다하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골목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젊은 여성은 자신이 없어 보였는데 정식으로 오디션 절차를 밟지 않아서 일까?


길거리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명화를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렸다 지우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그 자리에서 똑 같이 같은 그림을 그렸다. 같은 음악을 매번 연주하듯 반복되는 일과 같았다.



길그림.jpg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다음날 다시 그리고



피렌체에서 아침에 나가면 일찍 서둘러 다니는 단체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낮에도 유명 관광지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저녁이나 밤이 되면 하루 관광코스로 온 사람들은 떠나기 때문에 인파는 줄어들었다. 피렌체에서 숙박을 하니 여유 있게 유적지와 미술관 내부관람도 할 수 있고 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별러서 오는 여행이다 보니 유명한 곳을 찍고 겉에서만 보는 식으로 관광을 하게 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피렌체는 여건 되는 대로 며칠 머물면서 돌아봐야 좋을 곳이다.


2. 베키오 다리의 밤

베키오 다리 쪽으로 가니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아르노 강가에 다리의 반영이 비추었다. 빛을 받아 진한 분홍빛으로 밝혀진 건물들의 색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리 중간에 서있는 조각상도 붉게 빛났다. 어떤 대단한 인물일까 궁금해졌다. 흉상의 주인공은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였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조각가이며 금세공사인 그는 ‘메듀사의 목을 든 페르세우스’를 제작한 인물이다.



베키오밤.jpg 밤의 베키오다리 건물


동산.jpg 벤베누토 첼리니 흉상


다리는 원래 13세기 까지 푸줏간이나 대장간, 가죽 처리장 이 있어 악취가 심했던 곳이었는데 철거되고 16세기부터 보석상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다리 양쪽에 줄지어 자리한 보석상들 앞은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목걸이 팬던트 등 화려한 액세서리들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값은 다양하겠지만 비록 사지 못하더라도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베키오 다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지나치다 마주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절절한 연인들의 대명사인 것처럼 인식이 되는 그들.

알고 보면 그 사랑은 단테가 만든 허구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단테는 10세 때 아버지를 따라 방문했던 유력자 폴코의 집에서 그의 딸 베아트리체(9세)를 만났다. 9년이 지난 1283년 5월, 베아트리체가 길에서 단테를 보고 인사를 건냈다. 그들은 각자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했다. 베아트리체는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두 번의 짧은 부딪힘이 전부였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썼던 시를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발간했다.(1295년) 그의 대작 ‘신곡’에서 천국에 등장하는 인물도 베아트리체다.


단테는 정계에 입문해 두각을 나타냈지만 로마에 있는 동안 정적들로 인해 고향 피렌체로 못 돌아오고 56 세로 죽을 때까지 망명생활을 했다. 신곡은 망명생활하던 19년 동안의 어두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신곡은 로마시대의 서사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부활절 전후 일주일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으로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에는 자신의 적들, 연옥에는 자신의 친구와 존경하는 인물, 천국에는 베아트리체를 모셨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린 시절의 짝사랑의 열병이 그의 문학 활동에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작품에 라틴어를 쓰지 않았다. 그는 토스카나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피렌체 말이 이탈리아어로 확립되는데 공헌을 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짧게 마주친 것은 나비효과처럼 작용해서 위대한 업적과 연결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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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는 1117년, 133년 두 차례 무너졌다가 재건되었는데 지금 형태는 1345년에 설계됐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단테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8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잃고 10대에 장남으로서 가장이 되었다



3. 겉은 투박하지만 내실 있는 궁전, 베키오 궁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은 갈색 돌로 지어진 직육면체 건물이다. 가운데 94m의 망루 같은 시계탑이 솟아 있었다. 외관은 단순했지만 내부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겉으로는 소박해보이길 바라지만 내면은 실속을 추구하는 메디치가의 정략적인 면이 반영돼 있는지도 몰랐다.


1층 일부에 무료전시실이 있지만 입장료 12.5유로를 내야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친퀘첸토 홀에 들어서면 높은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워 장식한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인페르노’(inferno)에서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오른쪽 벽면에 그려진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아래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가 숨겨져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홀에는 실제 회의장 형태로 탁자와 깃발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거대한 분위기에 압도되며 위로 올라가니 아름다운 피렌체도시가 시원하게 보였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하얀 빛 사이로 점점이 짙은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붉은 지붕건물들과 조화를 이룬 바깥 풍경은 선명한 그림이 담긴 액자 같았다.


베키오궁내부.jpg 베키오 궁의 첸퀘텐토 홀


베키오궁그림.jpg 바사리의 '마르시아노전투'
베키오탁자.jpg 친퀘첸토 홀의 회의장 형태 탁자


베키오내부.jpg 베키오 궁 내부 친퀘첸토 홀의 그림
베키오창문.jpg 베키오 궁에서 본 바깥 풍경
표.jpg 입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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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델라 시뇨리아(지도자들의 궁전)이라 불리던 궁은 시의회의 명에 따라 1229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건물을 짓는데 착수했다. 볼록 볼록 튀어나온 벽 끝이 특징인 토스카나 고딕식 건물이다. 베키오 궁은 피렌체공국의 정부 청사였고 지금도 일부는 시청사로 사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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