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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5. 2022

햇살 아래 머물고 싶은 절

산의 품에 안긴 청량사 (淸凉寺)


이름 그대로 맑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산사를 만났다. 산의 품속에 안겨 햇빛 아래 빛나던 청량사. 햇빛과 공기가 맑아 마음이 시원해지는 곳. 마냥 그 느낌 그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은 장소가 청량사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말이 있다. 영화제목이기도 한 그 단어는 ‘1센트 짜리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예기치 않게 백만 달러 가치의 대상을 만난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급하게 떠난 여행에서 맞이한 청량사에서의 시간들도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7월 중순.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선생님들과 1박2일 연수 겸 여행을 떠났다. 일행들은 세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김밥을 먹으면서 안동으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고산정과 도산서원을 둘러본 후 농암종택에서 묵었다.      

 다음날은 선학정 주차장에서 내려 청량사로 올라갔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이미 등산을 한 기분이었다. 인솔하는 선생님은 하늘다리를 갈 사람들은 등산을 하고 걷기 힘든 사람들은 절에서 쉬면서 일행을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여자 선생님 들 중에 올라간 사람들도 있고 몇몇은 남겠다고 했다. 무리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왠지 그 곳에 머물고 싶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발길을 붙들었다. 절 마당을 가득채운 햇빛. 햇빛은 절 앞의 작은 항아리의 연꽃에 내려 빛나고 있었다. 장독대에도. 흙이 담긴 검정고무신안의 낮은 풀에도. 통나무로 만든 긴 화분에 심어진 채송화에도.     

 열두 봉우리 가운데 연화봉 기슭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연꽃의 꽃술자리에 자리 잡은 형상이었다. 많은 절들이 산을 끼고 있지만 청량사에서 받은 느낌은 특별했다. 유리보전과 선불장, 심검당, 산신각 뒤의 산은 병풍처럼 급경사를 이루어 절을 감싸고 있었다. 오층석탑과 범종각도 위에서 보면 경사도가 급격하게 내려다 보여서 시야가 여느 절과는 달랐다. 청량사는 그대로 산의 품에  안겨 산과 동화되어 있었다. 신라시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절터가 유지되어 왔다는 생각을 하면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게 여겨졌다.       

 지나온 교직생활을 생각해보니 긴 것 같기도 하고 짧기도 한 것 같았다.      

 영화제작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게 됐었다. 열정적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수상도 했다. 나는 엄마 역으로 출연도 하고 집을 촬영장소로 내어주기도 했다. 동아리 학생들이 토요일에 1박2일로 여행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회장과 부회장을 불러다 수련회는 지도교사가 동참해야한다는 학교 방침을 말했다. 학생들은 죄송하다며 다음에 선생님과 하루코스로 함께 가겠다고 했다. 월요일에 등교해서 동아리 남녀학생들이 어울려서 1박2일로 을왕리에 놀러갔다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계단에서 마주친 동아리 담당부장 여교사에게 허탈감을 표시했다. 몇 시간 후 부장회의에서 영화동아리를 폐부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동아리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본보기로 순식간에 결정된 일이었다. 학생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교사들에게도 자존심이 상했다. 학생들에게 무심했었는지 자책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서 학생들이 불편해 했나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었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거리를 얼마큼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배우는 입장이 되었을 때 회원들이 선생님과 1박2일 여행을 가자는 말이 나왔다. 반대가 많았는데 나 역시 내키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어렵게 여겨졌고 학생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사제지간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나고 나면 좀 더 너그러울 수도 있는데 자존심 상한 것만 크게 생각했던 것 같다. 30여년의 교직 생활도 마지막을 향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햇빛이 맑고 따사로운 절 마당에서 시간과 대인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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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청량산의 연화 봉 기슭에 자리 잡은 절. 신라 문무왕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법당인 유리보전에는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는 현판이 걸려있다. 응진전과 어풍대에서 청량사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800미터 높이에 있는 길이 90미터의 현수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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