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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5. 2022

거리는 진화한다

기찻길이 남아있는 연트럴파크


시선이 의식되지만 눈길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무리 속에 있지만 자유로울 수 있는 곳.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은 그런 분위기였다. 나무 아래 긴 벤치에 걸터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건물 2층 까페의 열린 창문가에서 밖을 향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버스킹 공연을 보는 사람들. 경의선 숲길 입구는 북적대면서도 도심 속에서 녹색공간의 여유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경의중앙선이 지하철로 조성되며 지상의 철길이 있던 곳에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경의선 숲길은 ‘연트럴 파크’로도 불리게 되었다. 자주 오는 거리도 올 때마다 다르니 질리지 않았다. 그림 배우러 1주일에 한번 씩 오는 길은 날씨 따라 계절 따라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월의 어느 날 오전에 비 내리던 날은 계류 따라 흐르는 물도 힘찼고 공원은 생기가 가득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7월의 햇살이 좋은날이 되자 하얀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니 마음도 풍요로워졌다     

 길을 따라 걸어올라 갈수록 점차 한산해 지면서 키 큰 나무들이 일렬로 심어진 가로수 들이 나타났다.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외국인들도 보였다. 길옆으로는 곳곳에 예쁜 까페와 음식점,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었다. 홍대 쪽 보다는 자연미가 있어 연남동 쪽으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가정집을 개조해 상가로 탈바꿈하는 곳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 남아있는 철길 위에서는 연인들, 친구들, 아이와 나온 젊은 부부들이 포즈를 취허며 사진을 찍었다.      

 철길을 보니 이곳이 기찻길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예전에 신촌에서 동교동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때때로 건널목에서 차가 멈춘 적이 있었다. 철길 따라 지나가던 기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서 기다려야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연남동이 이렇게 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모든 것은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다.      

  거리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70년대 신촌은 이대 앞과 연대 앞이 활기찼다. 중학교 때 교생선생님의 졸업연극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이화여대를 갔다. 연극이 끝나자 선생님은 학교 앞 '그린 하우스' 빵집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셨다. 구두 가게와 양장점이 늘어서 있던 휘황찬란한 이대 앞은 별세계였다. 대학을 다니며 그 거리를 많이 쏘다녔다. 하이드 파크 다방에서 120원짜리 커피를 시키고 강냉이를 먹으며 뮤직 박스의 DJ에게 신청곡을 청해듣기도 했다. 그때 들었던 곡들은 Sailing, Feeling, Hotel California 같은 팝송들이었다. 흐린 날은 음악 감상실에서 클래식음악을 듣기도 했다. 오리지널 튀김집에서 오징어 튀김도 먹었다. 1980년 5월, 내가 교생이 되어 실습을 나갔다가 '스승의 날'에 연대 앞을 지나던 날. 탱크들이 줄지어 지나갔고 정문에는 군인들이 서 있었다. 최루탄이 터졌고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들고 눈이 따가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거리의 풍경도 상황도 물가도 다 변했다. 이대 앞은 화장품가게들이 늘어났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지만 옛 영광은 사라졌다. 그린하우스, 하이드 파크도 없어졌고 장수하던 오리지널 떡볶이집도 사라졌다. 


 그 이후 신촌에서 많은 길들이 진화했다. 홍대 앞이 번창하면서 그 주변으로 가지를 뻗어 상수, 합정, 망원, 연남동 곳곳에 까페와 상점들이 들어섰고  새로운 곳으로 사람들은 몰려갔다. 오래 유지되면서 분위기가 이어지는 정겨운 거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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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 연남동 구간의 옛 지명은 세교리였다. 고지도에는 이 지역에 작은 물길이 여러갈래로 지났다. 공원을 조성하며 작은 실개천을 만들고 '세교실개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실개천은 경의선과 공항철도의 지하유출수를 이용해 (시간당150톤)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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