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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5. 2022

강서의 옛 자취를 찾아서

궁산에서 겸재 정선을 기리다


바깥에 나다니기가 망설여지는 한여름. 시원한 도서관도 좋지만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궁산으로 갔다. 근처의 정선 미술관도 다시 둘러보면 좋겠다 싶었다. 글쓰기 동호회원들과 함께 걸으며 서울 강서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알아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렀던 미술관에서 정선의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던 느낌은 계속 여운으로 남아서 나중에 혼자 들러서 찬찬히 작품을 음미해보고 싶었다.      

 평일에 개관하자마자 입장하니 여유 있게 1층부터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겸재 정선은 40세 늦은 나이에 관직을 시작해 세 번째 부임지인 양천에서 65세부터 5년간 현령으로 재직했다. 정선은 금강산이나 인왕산 부근 등을 많이 그렸지만 양천현령 시절에 ‘양천팔경 집’(8폭)을 그렸다. 양천팔경은 양천 현아 부근에서 바라다 보이는 한강변의 승경 8곳이다. 양화진, 선유봉, 이수정, 소요정, 소악루, 귀래정, 낙건정, 개화사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소악루가 그려진 풍경은 한강과 산이 어우러진 선경이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평화로움에 빠져 들어 이런 곳이 어떤 곳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국적인 것에 더 끌리게 되었는데 정선의 그림은 마음의 안식을 주는 느낌이었다.       

  정선미술관 뒤의 궁산에 소악루가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올라가보았다. 누각에 오르니 넓은 한강과 겹겹이 펼쳐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내판에는 이 장소쯤에서 그렸을 법한 겸재정선의 그림 ‘안현석봉’과 ‘소악후월’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안현석봉’은 해질 무렵 궁산에서 강 건너편 안현(지금의 안산)의 봉화 불을 바라 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는 멀리 붉은 점을 이고 있는 안산과 이어져 와우산, 정토산이 펼쳐져 있다. 가까이 좌측에는 수목사이로 소악루가 보이고 우측에는 탑산, 공암이 있다. 한강에 떠있는 돛단배들이 한가로워 보인다. ‘소악후월’은 ‘소악루에서 달을 기리다’라는 의미의 그림이다. 왼쪽 하단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늘어선 산기슭 사이로 소악 루와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우측 멀리 남산이 있고 바위절벽인 잠두봉(절두산), 선유봉, 두미암, 탑산이 보인다. 산봉우리 사이로 뜬 둥근달은 부드러운 달빛을 비춰주고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이병연의 시가 적혀있다.      

 그림과 실제 풍경을 비교해 보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남산과 안산, 넓은 한강이 보였지만 정선의 그림과는 분위가가 너무 달랐다. 난지도는 폐기물이 쌓여 윗부분이 평평한 거대한 산이 되어서 그 뒤 편 산들의 조망을  막고 있었다. 개발로 인해 원형이 훼손된 부분도 많았다. 올림픽대로에는 엄청 많은 차들이 다니고 있어서 시끄러웠다. 그림에 나온 옛 자취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씁쓸했다. 겸재 정선이 달라진 상황을 본다면 얼마나 놀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달리는 자동차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정선미술관에서 바라보면 논이었던 곳이 마곡지구로 개발된 현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300여년 후는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변화가 필연적인 것이라면 옛 것을 보며 현실을 생각하고 또 미래를 맞이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을 세우게 한 사람은 그 시대 왕이었던 영조도, 소악루의 주인 이유도, 화폭에 글을 적은 이병연도 아닌 겸재 정선이다. 기록의 중요성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소악루에서 궁산 정상으로 올라가니 양천고성지가 있었다.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삼국시대부터 한강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시설이 있던 곳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소나무에 둘러싸인 옛 성터는 고요하기만 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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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관된 겸재 정선 미술관은 9호선 양천향교 역 1번 출구에서 걸어갈 수 있다.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화를 독창적으로 완성하여 근대 한국화의 기원을 달성한 분이다. 

소악루는 궁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으로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1737년 자신의 집 남쪽에 지었다.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소악루를 1994년 한강 조망이 좋은 곳에 재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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