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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6. 2022

꽃무릇이 한창인 절 풍경

도심 속 마음의 휴식처 길상사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차 마시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 보면 성북동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지역이다. 최 순우 옛집, 심우장, 길상사, 옛 돌 박물관, 가구 박물관, 수연산방 등 가볼만한 곳이 많아서 마음도 넉넉해진다.      

 글쓰기 동아리에서 네 명이 만나 성북동을 갔다가 길상사에 들렀다. 언제 가도 도심 안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9월, 고즈넉한 사찰의 곳곳에 꽃무릇이 한창이었다. 이파리도 없이 곧게 뻗은 줄기 위 붉은 꽃잎들이 당당해보이기도 하면서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꽃과 잎이 다른 시기에 올라와 서로 만나지 못해서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상사화(相思花)라고도 한다.     

 자연스럽게 길상화(吉祥花) 김 영한 여사가 대화에 올랐다. 그 분은 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했고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절 뒤편에는 김 영한 여사의 공덕비와 백석 시인의 시비가 있었다.     

 일행들은 법정스님이 머무셨던 진영각을 둘러보고 마루에 일렬로 앉아 뜰을 바라봤다. 김영한 여사와 백석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누군가 시비에 있었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의 내용이 궁금하다고 했다. 한 분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낭독을 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로 시작해 이어지는 시를 모두 경청했다. 다른 한사람이 또 낭독을 해보고 싶다며 천천히 음미하듯 시를 읽었다. 초가을 빛을 받으며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생각해봤다. 분단으로 인해 헤어져 살았던 긴 세월이 그리움의 상징인 상사화와 연상이 되었다.     

 자신의 재산을 시주하며 ‘1000억의 돈이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했던 김 영한여사는 1997년 2억을 출연한 기금으로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나타샤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설도 있지만 길상사에 오면 나타샤는 자야(김영한)라고 여겨진다.      

 한 사람의 마음 씀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도심에서 안식을 얻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계속 김영한 여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이끼가 낀 기왓장 사이로 솟아 오른 꽃무릇. 곧 지고 말겠지만 처연한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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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시인의 연인으로 알려진 김영한 여사는 천억 원 대의 요정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했고 1997년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 도량. 2013년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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