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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6. 2022

승리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행주산성

꽃처럼 피어나는 고양행주문화제


 “여기 모인 병사들은 잘 듣거라! 나는 이곳 행주산성을 교두보 삼아 왜에게 함락된 한양을 탈환할 것이다.” 권율장군은 1593년 2월 12일 출사표를 던졌다. 2천 3백 명의 관군으로 3만 명의 왜군을 대적해야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결연한 의지가 필요했을 것인가? 의병, 승병, 부녀자까지 합세한 행주대첩은 전세를 역전시켰고  왜군은 격파되어 물러갔다.      

 승전의 그날이 떠오르는 ‘31회 고양행주문화제’가 열렸다. 축제현장을 사진에 담아보려고 행주산성으로 향했다. 서울을 조금 벗어나 강을 바라보며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떠오르던 곳이 행주산성이었다. 임진왜란 격전지라는 것은 막연하게 알았지만 이번에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충장사에서는 권율도원수와 행주대첩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전통제례인 고유제가 열리고 있었다. 권율장군 동상 앞에서는 승전굿(위령굿)을 위해 제단을 차리는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첩문 앞에서 개막식이 열렸고 취타대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며 경기도립 무용단의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당당하고 절도 있는 동작의 ‘훈령무’는 결전의 군사들을 떠올리게 했다. ‘북의 향연’ 공연은 승전의 그날 북소리를 연상시켰다. 마지막에는 출연자들과 관람객 들이 사회자의 구호에 맞추어 하얀색 비둘기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평화의 염원이 담긴 풍선들은 높이 날아올랐다. 고개를 젖혀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미소가 밝게 빛났다.       

 대합창 플래시몹 ‘산성에 부는 바람’은 왜적과의 전투가 임박한 당시의 행주산성과 사람들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드라마 형식의 ‘진중승첩’은 행주대첩 이튿날에 전투전개상황과 성과 등을 권율장군과 장수들이 백성에게 알리는 내용이었다. 권율 장군의 지휘 하에 하나 되어 열배의 왜군을 물리쳤던 그 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군사들, 의병들, 행주치마를 입은 아녀자들 복장을 한 젊은 학생들은 진지하게 연기했고 활짝 웃었다. 선조들이 이 강산을 지켜냈기에 가능한 자유로움과 축제였다.      

 어두워지자 행주산성 곳곳에서 ‘달빛야행’ 행사가 진행되었다. 입구의 커다란 보름달 모형에 불이 들어오자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은 달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설치된 조형물들에도 불이 밝혀졌다. 권율장군 동상과 주변에 조명이 비춰졌고 나무들 사이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대첩 당시의 상황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정상 가까이 오르니 강변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방화대교의 아치는 화려했다. 오른쪽으로 강을 끼고 걷는 길에 설치된 철망위에 색색의 LED 조명으로 만든 글씨들이 있었다. ‘너의 하루에 늘 머물고 싶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너의 하루에 머물고 싶다’,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가족들 생각도 들었고 다음 축제 때는 한강의 야경을 같이 보면 좋겠다 싶었다.      

 정상부에 오르니 덕양정, 진강정에도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높게 솟은 대첩비를 화면 삼아 미디어 파사드 쇼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대첩비는 하늘색, 보라색, 붉은 색으로 바뀌며 현란한 문양으로 수놓아졌다. 붉은 꽃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무지개빛으로 빛나기도 했다. ’나는 물러설 곳도 없다. 두려워 말고 힘을 합쳐 이곳을 지켜내자.‘ 권율장군이 행주대첩을 지휘하던 그날의 포효와 승리의 함성이 대첩비에 영상과 소리로 재현되었다. 행주대첩으로부터 400여년이 지나 문명이 발달해 그 현장에서 미디어로 상황을 재현해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산성의 정상부에서 바라보니 한강변의 불빛은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달빛 아래 대첩 비각이 보이는 풍경도 평화로웠다.      

 한강의 야경을 다시 보며 내려와 대첩비에 도달하니 뮤지컬 행주대첩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란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자식을 잃은 엄마는 울부짖는다. 왜군들의 횡포 속에 권율군은 각오를 외친다. ’남자는 오직 의(義)와 기(氣)만을 생각할 뿐이지 어찌 공적과 명예를 따지겠느냐,‘ 권율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의 대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관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가을밤을 즐기고 있다. 축제의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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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은 덕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1km에 걸쳐 쌓여진  토성이다. (현재 415m복원)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난 곳이다. 1602년 덕양산 정상부에 행주대첩 초건지(높이 178cm)가,1970년 행주대첩비(높이 15.2m)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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