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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6. 2022

단풍사이 아침 햇살이 신비로운 곳

눈부신 가을의 창덕궁 후원


틀에 박힌 사회에서는 먼 곳을 꿈꾼다. 회사를 나온 딸은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선뜻 동조를 못해주고 재취업을 다구치고 말았다. 답답할 것 같은 딸에게 고궁산책을 하자 했다.     

 햇살의 느낌은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다르다. 창덕궁 후원의 가을 오전, 단풍사이로 빛이 쏟아지자 비현실적인 세상이 펼쳐졌다. 안내를 따라 걷다가 문득 되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뭇잎사이 빛 내림으로 돌담과 낙엽 쌓인 바닥위에 그늘자국이 드리워졌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네모난 너른 연못과 작은 둥근 섬이 있는 부용지(芙容池)에 이르렀다. 네모는 땅을,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부용은 활짝 핀 연꽃이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지(芙容池)에서는 낚시도 했었다 한다. 담으로 둘러싸인 궁궐 안에서  옛사람들은 넓은 세상을 그리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당에 올라가니 규장각과 부용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별했던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애련지, 관람지, 존덕지, 옥류천 지역을 걸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와 누각들을 만났다. 역대 왕 들의 흔적도 있었다. 영화당의 편액에는 영조의 어필이 남아있고 존덕정에 걸린 현판에는 정조의 의지가 담겨있다. 소요암에는 인조가 쓴 옥류천이라는 글씨와 숙종이 지은 4줄 어제시가 새겨져있다. 비원(祕苑)은 ‘숨겨진 공간’ 이미지로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명칭일 뿐, 후원(後苑)은 왕실의 휴식공간이자 문무를 연마하고 과거시험을 치룬 공간이었다.     

 왕이 농사체험을 했던 논도, 폭포처럼 여겼던 물줄기가 내려오던 바위도 규모는 작았다. 권력을 지녔던 왕족들도 궁궐 안의 삶이 답답했을 것 같다. 아니면 주어진 공간 속에서의 생활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게 인간사다.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아쉽지만 힘든 상황 한 가운데 있을 때는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막막하고 두렵다. 재취업이 된 후에는 ‘실직상태에서 여행을 하며 여유 있게 보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느긋하게  상황을 즐겨도 좋았으리라는 건 일이 잘 풀린 후에나 할 수 있는 후회이고 안개 속에 있을 때는 겨를이 없다. 힘든 딸에게 위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고만 하게 되니 미안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뒤쳐진다며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부모로서 부족했던 면이 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되었다. 살면서 때로는 종이로 만든 세상처럼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한없이 답답할 때도 있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처럼 어려운 상황은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었던 궁궐조차 열린 공간이 되었다.  돈과 시간, 건강과 열정이 있으면 먼 나라로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스스로 발목을 잡는 벽에 갇히지 않는 한, 세계 여러 곳으로 갈 수 있다. 시간이 더 흘러 우주 시대가 오면 지금 사는 공간의 한계가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창덕궁 후원을 걸으며 딸에게도 나에게도 물리적 공간과 마음의 공간이 확장되기를 바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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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은 태종 때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고 세조 때 정비되었으며 연산군 때  치장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정자들은 광해군 때 복원됐고 1623년 인조 때부터 개수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자연지형을 살려 골짜기에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조성되었으며 11만평규모이다. 효명세자가 공부했던 의두합은 단청이 없고 북향이다. 연경당은 사대부집 처럼 소박하다. 후원을 관람하려면 6일전에 인터넷예약을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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