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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Mar 01. 2019

ㅌㅅ 후 제주도의 한 달 #8

9일 차 - 휴식은 또 다른 시작

제주도 9일 차, 두 번째 방문객이 떠나는 날이다.

 어제 그제 열심히 놀아 다녔으니 오늘은 조금 늦게, 그리고 한적하게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잘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자고 12시가 다 돼서 집을 나왔다. 어제는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에 해변을 제대로 못 봤을 동생을 위해 다시 함덕 해변을 찾았다. 해가 뜨고 안 뜨고의 해변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해장을 겸해 해물라면 가게를 찾았다. 바다가 보이는 창에 앉아 딱새우, 전복까지 올라간 라면에 전복 김밥까지 추가해 배 터지게 흡입했다.

완벽한 해장을 선물해준 '해녀김밥'과 창가 자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의미심장한 메시지

 우연히 앉은 창가 자리 앞에는 "서툴더라도 반짝이게 살아갈 것"이라는 캘리그래피가 붙여져 있었다. 글씨도 이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제주도에 방문했을 많은 관광객에게 참 알맞은 메시지 같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요즘 힘들었는데 힘이 된다면서 스*벅* 기프티콘을 주더랬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두 번째로 "델문도"를 방문했다. 아침에 왔던 저번 방문과는 다르게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무슨 생각을 할 거리가 그리 있는 것인지 우리는 꼬박 2시간을 넘게 앉아 있었다. SNS 명소 답게 테라스에는 인생사진 건지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꽤 추워서 평온한 척 순간 사진만 찍고 후다닥 실내로 들어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델문도"의 시그니처 칵테일과 아메리카노. 평화로운 오후다.


 동생의 비행기 시간은 오후 9시.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도 잠시, 맑디 맑았던 아침이 무색하게 저녁이 다가오면서 미세먼지가 제주도를 덮어왔다. 저 멀리 산까지 보이던 날들과는 다르게 바로 코 앞의 아파트도 뿌옇게 보이면서 워낙 제주도만의 특권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육지의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야 하는데!

 동생의 마지막 제주도 저녁은 밀면과 수육이었다. 제주시 남쪽에 "산방식당"이라는 곳이 유명하다 하여 갔는데, 밀면은.. 음.. 그냥 밀면 맛이었고, 수육이 예상치 못한 꿀맛을 선사했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불리고, 동생은 다시 개강을 맞이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돌아가는 동생에게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썸을 타라는 미션을 던져줬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이런저런 정리를 했다. 잠에 들기 전 인터넷을 하다가, 준비 없는 퇴사는 백전백패라는 주제의 글을 보았다. 준비란 역시, 퇴사하고 이어서 할 생업을 준비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걸까. 연애와 마찬가지로 퇴사 또한 그 한 단어 안에 수많은 형태를 품고 있을 테지만, 백전백패라는 말은 너무했다 싶다. 끝날 때까지 패인 지 승인지 누구도 알 수 없을 텐데, 시간이 지나고 이 제주 생활을 돌아볼 때 제주살이 때문에 패했네 이겼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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