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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Mar 01. 2019

ㅌㅅ 후 제주도의 한 달 #9

10일 차 - 아지트 찾기와 다시 쓰는 시간표

다시 오랜만에 혼자 눈 뜨는 아침.

 어제 오후부터 심해진 미세먼지가 오늘은 더욱 심해졌다. 오늘은 왠지 나가기 싫었는데 자기 합리화하기 딱 좋은 날씨다. 이렇게 혼자가 된 기념으로, 아지트로 삼을 카페와 생활시간표를 짜 보기로 했다. 무언가 첫 주에 이미 다 했었어야 할 것 같은 일들이지만...


 먼저, 아지트로 삼을 카페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오션뷰일 것.

-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는 카페일 것.

- 몇 시간씩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것.

- 차 타고 5분 이내의 거리에 있을 것. (걸어갈 수도 있게끔!)


집 바로 근처의 카페는 다 좋은데 오션뷰가 아니라서 패스. 함덕에 있는 모든 카페들은 다 이쁘지만 관광객 천지이므로 패스. 월정리는 너무 멀어서 패스. 북촌 항구도 열심히 돌아다녀봤으나 펜션은 많아도 카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조건의 카페를 찾았는데!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식당 겸 카페. 실내 좌석은 물론 사진처럼 야외 자리도 있다.


여기는 여러모로 수상하다. 평일에 3번을 갔는데 항상 "금일 휴업"이라고만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가게 안을 봤는데 문은 잠겨있는데 안에 불은 켜져 있다. 또한 잠긴 문 사이로 꽤 많은 우편물들이 꽂혀 있었다. 장사를 접었다고 하기엔 너무 깨끗한 간판과 메뉴 판하며.. 당분간 열지 않을 것 같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라 하루에 한 번씩 계속 찾아가 볼 예정이다.

 결국 오늘도 아지트 찾기는 실패. 내일 저기를 한번 더 가보고, 오션뷰는 아니지만 후보로 정해둔 카페를 한번 가 볼 예정이다. 커피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면 뭐.. 오션뷰는 내어줘도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건강한 제주도 라이프를 위해. 그리고 지난날들이 대부분 술로 마무리가 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시간표를 짰다. 세세한 것은 그 날 일정에 따라 조금씩 바뀌더라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꼭 지킬 예정이다. 

 - 7:00 기상

 - ~ 8:00 아침 운동 (미세먼지..)

 - ~ 9:00 아침 식사 및 정리

 - ~ 10:00 손글씨 교정

 - ~ 11:00 외출 및 카페 방문

 - ~ 16:00 카페에서 브런치 및 독서

 - ~ 18:00 낮잠 및 저녁

 - ~ 23:00 자유시간! (혼영 혹은 다른 곳 방문 등등)

 사실 시간표라 하기도 민망할 만큼 할 게 없지만.. 독서, 브런치, 손글씨, 운동 이렇게 4가지는 꼭꼭 꾸준히 해나갈 셈이다. 그래도 제주도에 왔는데 맨날 카페만 가긴 좀 그러니까... 가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하면 나름 꽉 찬 하루가 될 것 같다. 너무 빡빡하고 치밀하면 오히려 또 스트레스나 주겠지!라고 생각해본다.




 얼마 전에 시작한 "트래블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배우 이제훈, 류준열이 쿠바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예능인데 아직까진 2회만 해서 류준열만 나오고 있다. 배낭여행 콘셉트이라면서 어차피 제작진이 다 미리 알아보고 같이 다니는 속이는 사람도 속는 사람도 아는 콘셉트이라 별로 안 좋아하지만, 내 처지가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었다. 쿠바의 어느 시골에 도착한 류준열은 딱히 할 것도 없이 그저 마을을 돌아다니다 멍 때리고, 일몰을 보며 멍 때리고 사이사이에 독백을 하고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정확히 이 멘트는 아니었겠지만 이런 취지의 말이었다.


 "딱히 여행이라 해서 꼭 누구를 만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여기 있음으로 해서,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들이 다 여행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못하다가 여행 와서야 할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전 쿠바 오고 오늘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확실히 혼자 있는 시간의 참된 가치는 멈출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단순히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이건 잘했지, 이건 그러지 말 걸 하는 평가가 아니라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 혹은 그때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덮어두었던 것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끄집어내야 할 일들. 이 시간 동안 지나쳐왔던 것들에 대해 충분한 시간과 생각을 들여야겠다.

 여러모로 제주도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제발 미세먼지가 빨리 사라졌으면..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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