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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Mar 05. 2019

ㅌㅅ후 제주도의 한 달 #12

14일 차 - 새로 산 카메라에게 미안.

미세먼지 탓인지 어젯밤에는 고양이 가족이 오지 않았다.

 매일 밤 시끄러운 것이 짜증 났었는데 막상 또 안 오니 다른 밥통이 생겼나 싶어 조금 섭섭해졌다. 색깔도 다 다른 애들이 가족인지 몰려다니는 것이 귀여웠다. 하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독채가 아니라 하나의 빌라여서 (이름도 정겨운 다려마을) 나 말고도 밥 주는 사람들이야 많을 터였다.


 오늘도 요란한 미세먼지 알람을 들으며 일어났다. 예보를 보니 분명 좋음이었던 내일의 예보가 그새 나쁨으로 바뀌어 있었다. 금요일에는 한라산을 등반할 예정인데... 며칠 째 이어지다 보니 이젠 그래도 짜증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든다. 나갈 곳이 없으니 돈을 아낄 수 있다던지, 혼자 할 일 할 시간이 많아졌다던지.


 어젯밤에는 그렇게 찬양하던 '그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채용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메일을 보내 놓고는 오늘 아침 8시에 답변이 왔을까 확인하는 나를 보며 기가 찼다. 이미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조급한 성격 때문에 발목이 많이 잡힐 테지. 서울은 계속되는 미세먼지로 기관지도 기관지지만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던데, 3일째 계속되다 보니 무슨 느낌인지 알 것도 같다. 계속 필요 이상으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랄까.


 기분 전환을 위해 마음의 고향 함덕을 찾았다. 오늘도 '델문도'는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이고, 최악이라고 경보를 울려대는 미세먼지에도 해변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로서는 관광객들을 보고 약간 기분이 업되지만, 웃고 있는 저들도 사실 속으로는 큰 맘먹고 놀러 온 제주도가 이 모양 이 꼴이라 상당히 기분이 별로일 것이다. 불과 며칠 전의 푸른 바다를 아는 나로서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델문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스*벅*'가 꽤나 크고 쾌적하게 자리해 있다. 방문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도의 '스*벅*'는 제주도 특산 음료들로 가득하다. 아직 다 마셔본 건 아니지만 제주 말차 라테가 아주 기가 막히다. 그래도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로컬 카페도 많이 애용해 주시길.

 '델문도'와 다르게 여기는 묘하게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은 느낌이다. 서울처럼 여기저기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무언가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덕분에 현지인 코스프레 중인 나로서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환경이다.




 누가 봐도 돈이 안 될 것 같은 다큐멘터리가 그럼에도 계속 제작되는 것은 물론 공영방송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제도가 큰 한몫하겠지만, 그 필요성을 사람들이 꾸준히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물론 그렇게 많은 다큐멘터리를 본 것은 아니지만, 재밌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떠올라서 다시 찾아보게 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금까지도 인상 깊은 EBS 다큐 프라임의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이제는 거의 '아마존의 눈물' 급으로 매우 유명해진 한국의 대학 교육 현황을 그린 5부작이다. 3부작부터는 상당히 기획이 흐릿해진 느낌이 나지만, 그럼에도 매우 현장감 있고 깊게 한국의 대학을 그렸다. 그 다큐에서 지적한 한국 교육의 수많은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실천적으로 개선하진 못했지만, 그 다큐를 보고 난 뒤 현실에 대한 약간의 반항 의식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계속 비현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EBS의 '시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짧게 봤다. 

 요즘 신입사원들의 퇴사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초반부에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중반부부터 그렇게 힘든 취업난을 뚫고 취업을 해놓고는 1년도 안돼서 다시 퇴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웃기게도 정말 딱 나의 이야기라서 안 볼 수가 없었다. 결혼은 두 당사자간의 일이 아니랬던가. 퇴사 또한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내 직업이고 내 생활이고 내 미래지만 온전히 나만을 생각한 결정이 되기는 힘들다. 다큐에서 말하는 퇴사자들의 제일 큰 고민은 '부모님'이었다.

 항상 내가 공기업에서 일하길 바랬지만, 대기업에 합격하고 시골집으로 축하 케이크 및 화환이 도착하고, 그럴싸한 팀명이 적힌 첫 명함을 갖다 드렸을 때 탐탁지 않아하면서도 주위에 뿌리던 부모님이셨다. 부모님들께 자식의 취업이란 무슨 의미일까. 

 매일 뉴스에서 나오는 취업난을 뚫었다는 대견함? 

 이제 지 한 몸은 먹고살겠지 하는 경제적 안심?

 이름만 대면 연세 지긋하신 분도 알 만한 회사에 다닌다는 자랑스러움?

 무엇이 됐든 나의 퇴사는 부모님의 그 어떠한 마음을 어긴 것이고, 그 마음은 다시 새로운 불안감으로 대체된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불안감 혹은 노파심을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다. 최악을 가정해도 내 한 몸은 먹고 살 자신도 있으며, 그렇게 그냥 안정을 추구하고 무슨 일을 하든 매달 돈을 받는다는 사실에만 안주해서 살다 보면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없을 때 그 공허함과 후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신입사원들이 퇴사하는 이유가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듯 조직 문화에 대한 부적응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 내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해서 바로 때려치울 만큼 생각이 얕진 않다. 이대로는 옳지 않다는 확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삶에 온전히 충실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만 오늘도 공기업 채용계획을 보내주는 엄마한테 "나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한테 메일 보냈어!"라고 하기는 정말 생각보다 힘들다. 공기업 시험을 슬쩍보고 당당하게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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