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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Jan 17. 2021

코로나 시대에 과몰입하는 이야기

<프리즘> - 손원평 장편소설

* 본 글은 소설 <프리즘>의 일부 스포일러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취향이지만 귀에 계속 들어오지는 않는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개성이 담긴 개인 카페의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책을 읽는 휴식을 자주 그리고 있었다. 온전히 책에 빠져서는 어느덧 달라진 채광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라고 짐짓 놀라게 되는 한 건 없지만 내심 만족스러운 휴식을.


    그렇지만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인지 지난번 읽은 <내게 무해한 사람> 이후에는 좀처럼 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책을 손에 익혀보고자 손원평의 <프리즘>, 그냥 다 아는 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 그리고 유튜브의 도서 큐레이션 채널에서 최근 많이들 다루고 있는 샤우나 사피로의 <마음 챙김>이라는 책을 사들였다.


    한국 장편 소설은 나에게는 치트키 같은 장르다. 초반 30쪽만 읽으면 삽시간에 그 등장인물과 스토리에 몰입을 하게 되고, 그 날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린다. 다행히 오늘은 차분히 내일의 출근을 기다리는 일요일이었고, <프리즘>은 즐거운 소설이었다.


    <프리즘>은 20대 후반의 '예진', '호계' 그리고 30대 중반의 '재인', '도원'의 얇은 우연과 그렇지 못한 감정들로 쌓여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말을 할 만큼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내 취향대로 도서를 고르다 보니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왠지 한국소설은 다른 나라의 소설들에 비해 스토리라인이 평온한 느낌이다. 일본, 북미, 유럽의 소설들은 대부분 그 스토리의 긴장감, 기발함에 놀라며 읽게 된다면, 한국 소설들은 마치 내 친구의 혹은 나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편안함으로 읽게 된다.


    <프리즘> 또한 주위에 한 명쯤은 지인으로 있을 법한 4인의 주인공들이 일상과 추억들에 대한 각자의 후회와 다짐을 겪어가며 연애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한국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다이내믹한 스토리 변환이 없이도 이미 나의 이야기 같은 몰입도를 기반으로 등장인물들의 상념에 같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 소설들은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나 대사가 없으면 금방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한국 소설은 감정, 상황 묘사에 대한 문장들에 더 눈길이 머무른다.


    '예진'은 특유의 밝은 기운으로 소설 내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사랑에는 실패를 거듭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반추한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구분 못하는 거 아니야?"

    자주 연애를 하고 자주 헤어지는 친구들에게 짐짓 무게를 잡으면서 '너무 그냥 외롭다고 사귀는 거 아니야?'라고 하고는 한다. 사랑하는 마음과 외로움에 만나는 마음이나 구별할 생각을 했지, '외로움'과 '심심함'을 구분한다는 생각은 꽤 인상이 깊었다. '예진'은 유난히 사랑을 많이 하고 실패한 사랑에 힘들어하는 본인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한 생각이지만, 나는 최근의 내 모습에 이 고민을 덧대어 보았다.


    분명히 생각해보면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내 시간도 많아지고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크게 감소한 것이 맞다. 그럼에도 늘어난 이 나의 자유를 어떻게 할 줄 몰라 내심 답답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편안한데 공허한 이 마음은 '외로움'일까 '심심함'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유명한 '코로나 블루'인가? 그럼 애초에 책이 던지는 질문처럼 '외로움'과 '심심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짧고 긺의 문제인지, 가볍고 무거움의 문제인지. 책에서 답을 알려줬다면 실망했겠지만 '예진' 또한 알 수 없는 질문에 짐짓 고민을 하다가 이내 마음속에서 지워낼 뿐이다.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내적 성장으로 마무리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그 감정들이 안타깝고 부럽기도 하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인데 왠지 모르게 비일상적인 것 같은 느낌. 친절하게도 작가의 말에서 그 기시감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우연'이라는 마법은 얼굴을 덮은 마스크의 면적만큼 줄어들었고, 서로가 서로의 매력을 알아챌 가능성은 경계심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버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많은 우연과 충동들은 '코로나'와 '마스크'이전의 것들이었고 벌써 1년이 되어가는 코로나 사태로 그 기시감의 이유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역시 소중한 것은 없어져봐야 소중한 줄 안다고, 있을 땐 있는지도 몰랐던 '우연'이라는 마법이 한층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끊임없는 부양책과 실패 속에 근거 없는 소문에라도 기대고는 하는, 감정 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요즘, <프리즘>은 씁쓸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좋은 '과몰입'을 하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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