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긴 했는데..?
2번째 이직을 결정하고 나에게는 평생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은 3주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중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24일 첫 출근이니까 13일.. 이니까 사실은 아직 45% 정도 지나갔다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이 3주는 근 10년 내 다시는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일지 모른다. 대한민국 직장인으로 태어나 언제 또 3주 동안 어떤 업무 걱정도 없이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퇴사를 준비하던 12월 30일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신나게 또 게으르게 놀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맞이한 휴가 첫 주, 경주에 있는 본가를 찾았다. 습관적으로 회사 메신저와 메일 한참 찾다가 사무실 나오면서 어플을 지웠던 것이 기억났다. 평일 아침에 날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놓이면서도 씁쓸했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엄마에게 당당하게 재취침을 알리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머니들이 이런 걸 두고 볼리가 없다.
연말이라고 좀 흥을 못 이겼더니 작년 추석 때보다 한참 불어난 내 몸에 대한 엄마의 잔소리였지만, 곧 그 잔소리는 엄청난 연계를 보여줬다. "그 몸뚱이를 여자 친구는 가만히 두디?"는 "여자 친구와의 결혼"을 상기시켰고 "결혼"은 "나의 경제행태"를 상기시켰으며 "나의 경제행태"는 반년 째 발목을 잡고 있는 "주식"을 상기시켰다. 그랬다. 나는 이 황금 같은 3주를 누구보다 게으르게 보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학교 때 전공수업을 들으며 절대 광고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쩌다 마케팅팀에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나름 충동을 잘 참아가면서 살았다 생각한 지난 4년이었는데, 내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눈 감고 넣어도 돈을 벌었다는 작년 주식 시장에서 나름 재미도 봤는데 언제 내 계좌는 이렇게 쳐다만 봐도 식은땀이 나게 됐는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산다고 살았는데 내 인생은 내 인생에서 제일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또 뭔가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고 생산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한 장기 휴가가 시작됐다.
아침엔 다이어트에 좋다는 공복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으며 시사 유튜브를 보고, 1~2시간 정도 투자 공부를 하고 있으면 공복 운동의 부작용으로 엄청난 피로가 몰려온다. 못 이기는 척 낮잠을 자고 나면 오후 2시쯤. 이때쯤이면 솔직히 좀 재밌는 것을 하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알아서 채찍과 당근을 주었으면.
감당하지 못할 자유는 온전히 즐기기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