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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Feb 13. 2022

결혼(준비)에 대한 기록

1. 가족 인사드리기

    어제 여자 친구네 가족분들(아버지, 어머니, 오빠)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다. 지난달의 프러포즈로 시작된 공식적인 결혼 과정의 2번째 단계였다. 형이 결혼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꽤 결혼을 했지만 청첩장이나 받고 결혼식장이나 가봤지 내 결혼은 이렇게 신경 쓸게 많을지는 전혀 몰랐다. 선배들에겐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겠지만..


    1. 어디까지 이야기를 하고 만나는 것인가?

    가장 크게 헷갈리는 부분은 이 자리에서 비로소 결혼을 허락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여자 친구를 통해서 내 정보를 부모님께 흘러드리고 어느 정도는 결혼을 합의한 상태로 만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오던 장인어른, 장모님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온갖 테스트를 받던 장면을 생각한 건 아니지만 또 이런 자리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 그게 마냥 허구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이 결혼 반댈세!라는 생각으로 오시진 않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2. 선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생각보다 이 선물 부분이 애매했는데, 무난한 후보는 '한우', '과일', '영양제'였다. 다만 우선 개인적으로는 너무 취향을 안타는 선물이다 보니 조금 더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백화점을 방문할 텐데, '한우'의 퀄리티가 다른 두 개에 비해 월등하다 보니 고민에 빠졌다. 명백히 한우가 좋아 보이는데.. 아무리 싼 선물세트를 골라도 다른 두 개를 합친 것보다 가격도 세다. 첫인사니까 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내 벌이를 뻔히 아실 텐데 분수에 맞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영양제'로 최종 선택했다.


    3. 콘셉트는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 것 또한 매우 어렵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여자 친구의 사전 조언이 매우 중요했다. 살갑게 애교많은 사위로 갈 지,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서 진중한 느낌을 잡아야 할지가 큰 고민이었는데 자칫 가벼워 보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하게 진지한 인상이 나을 것 같아 최대한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도록 주의했다.


    4. 예상 질문 준비는?

    커뮤니티에 찾아보면 이런 경우에 대비한 예상 질문 리스트 등이 있다. "결혼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지끈지끈한 질문부터 "자네 꿈이 뭔가?" 등의 자소서 같은 질문까지. 나도 몇 가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긴 했었는데, 모범 답안을 준비해도 막상 질문을 들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괜히 나중에 찝찝하기만 할 수 있어서 차라리 준비를 안 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그리고 가족들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보다 질문을 많이 안 하셨다.

    

    저녁부터 부모님 댁에서 다과까지 약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예상보다 덜 긴장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무의식은 아니었던 것인지 인사드리고 나오자마자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몇십 분 전의 대화도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주제도 있었고 되게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냥 짧게 지나간 느낌도 들었다.

    집에 오면서 있었던 일을 복기하다 보니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왠지 모를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최종면접인 줄 알고 긴장 잔뜩 하며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1차 면접 같은 분위기의 면접을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이게 잘하고 온 것인지, 오늘 자리를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미 지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결혼 골인까지 수많은 단계 중 이제 하나를 지났을 뿐이다. 여러 결혼식에서 아무 생각 없이 와 신랑 신부 이쁘네 하면서 박수만 치던 지난날이 조금은 미안해진다. 저 자리에 서기까지 저 둘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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