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잠 Apr 26. 2022

어디선가 일어난 이야기

캠퍼스에 만개한 벚꽃의 한 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졌다. 떨어지던 꽃잎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벤치에 앉아 멍하니 쳐다보던 현의 콧등 위에 안착했다. 봄의 캠퍼스 구경도 질렸는지 현은 후- 꽃잎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휴학하지 않았냐? 개강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여기서 뭐해?"


언제 왔는지 분주하게 다음 수업을 가던 동기 도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아. 학점 증명서 떼려고 왔는데 날씨가 좋길래 그냥 앉아 있었어."

    "팔자 좋네. 근데 학점 증명서는 왜?"

    "인턴 하는데 필요하다던데? 근데 내 점수가 적힌 증명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니 학점으로 도움이 되는 회사면 네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이미 붙었어. 그냥 인사 등록하려면 필요하대."

    "어? 아니 너 뭐 그냥 휴학하고 논다고 하지 않았어?"

    "1달 정도 노니까, 아니지 방학까지 하면 한 2~3달 놀았더니 이것도 야 못하겠더라. 너 근데 수업 안 가냐?"


저쪽 멀리서 다른 동기가 도현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가야지. 그래서 언제부터 출근하는데? 출근하기 전에 한번 놀아야지."

    "됐어. 오늘부터야."

    "응? 아니 근데 무슨 출근을 이 시간에 해."


멀어지는 도현을 뒤로하고 쿨한 척 돌아섰지만 이건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한 현 나름의 시간 때움이었다. 지난 학기에 인턴 생활을 한 여자 동기가 언젠가 처음부터 너무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면 일을 엄청나게 준다고 했었다.


    현은 옆에 있던 가방을 집어 들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면접에서 대표는 어눌한 한국말로 이 회사는 자율 근무제니 언제든지 와서 8시간만 일하고 가면 된다고 했다. 야행성인 현은 평소처럼 10시에 일어나 12시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자율 근무제라도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조금 긴장했다. 임원진이 현재 미국에 있는 관계로 모든 면접은 화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사무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MISO"

얼핏 봐도 규모는 작았지만 스타트업 다운 심플한 외관이 그럴싸해 보였다. 이게 스타트업이라는 건가?

어디선가 봤던 다큐멘터리 속 자유로운 스타트업 영혼을 떠올리며 현은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철컹'

  ..? 분명히 12시가 넘었는데, 문이 잠겨있다고? 스타트업이란 정말 자유로운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현은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따로 실무진이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받은 적은 없어서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같은 층이 다른 회사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일을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들게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누군가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스마트폰만 보며 걸어오던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무실까지 걸음수도 이미 외워둔 듯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철컹'

    "아 맞다. 오늘 다 오후 출근이랬지."

여자는 자연스럽게 옆 창문의 창틀에서 카드 키를 꺼내더니 문 옆에 있는 보안 패드에 갖다 댔다.

이대로는 문이 열려도 무단출입이 될 것 같아 현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드디어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든 여자가 쳐다봤다.

    "아, 누구세요? 인턴분?"

    "네. 오늘부터 출근하라고 하셔서요!"

    "면접은 K랑 보신 거죠?"

    "아 대표님 말씀이신가요? 네네!"

    "네 그럼 일단 들어오세요. 저는 정 서연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최 현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까닥한 서연은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열고 블라인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30평 남짓의 공간으로, 학생 때 담임선생님과 1:1 면담을 하던 것 같은 조그만 방 한 개 외에는 모두 오픈되어 있었다. 한 구석에 작은 싱크대, 복합기를 비롯한 소위 탕비실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공간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책상과 모니터의 나열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정체 모를 용어들이 적힌 화이트보드까지.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에 놀란 먼지 입자가 훤히 보이고, 책상 위에 쌓인 쓰레기들을 서연이 아무렇게나 버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현은 휴학 후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평범하게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다 대학 가서 군대나 다녀온 내 인생 최고의 모험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 금수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