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속의 복식 분석

by ghu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는 『소설의 이론』 첫 문장을 통해 ‘별이 길을 밝혀주던 시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대한 막연한 열망과 향수를 표현한다. 동양의 요순시대가 그러하듯 서양의 그리스 로마시대 또한 단순히 시간적 과거가 아닌 돌아갈 수 없는 태평성대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동경은 보다 구체화되어 노스텔지어 형식으로 사회문화 전반에서 등장하는데 복식사에서의 첫 시작은 신고전주의 복식이라 할 수 있다. 과잉장식과 사치, 시각적 화려함의 극대화에 주목한 것과 달리 그리스 시대와 같은 단순화된 복식을 통한 활동성과 반귀족적 성향을 강조하며 대중적 패션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패션이 특정 시간과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복 형식, 즉 일시성과 변화를 전제로 하는 개념임을 고려했을 때 신고전주의 복식은 ‘변화’의 측면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대 복식이다. 최근까지 신고전주의 복식은 복고풍 유행과 자연미, 단순성의 추구 경향까지 이어져 그 연구 가치가 높다. 복식에 혁명적 의미를 최초로 녹여냈다는 점에서 복식이 장식, 치장의 기능을 넘어 사회적 장치로서 보다 심층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합적으로, 신고전주의 복식은 근대적 복식임에도 불구하고 ‘복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대적 답과 맞닿아 있다.

본 글에서는 신고전주의 복식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 평가받는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문학작품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그를 영상화한 한 편의 영화와 두 편의 드라마를 대상으로 여성의 복식을 분석한다.

문학사적으로 제인 오스틴은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이지만 과장된 로맨티시즘의 문학을 추구하기보다는 신고전주의를 문학적 신조로 사회생활, 가정생활의 사실적 묘사에 힘썼다. 따라서 그녀의 『오만과 편견』은 신고전주의 복식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자료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시대적 배경은 근대가 시작될 무렵의 19세기 혁명기로 복식의 화려함과 장식적 측면의 완성기라 불렸던 로코코 시대 양식에서 벗어나 숭고하며 단순한 자연미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돋보이던 시대다. 또한 편리성을 이유로 프랑스의 궁정양식을 탈피해 영국지방의 자연귀의적 복장을 추구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19세기는 기존 전통 사회를 구성하던 귀족 세력과 신흥 부유층들이 충돌하고 국외에서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기로 대표되지만 소설은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탓에 이러한 불안정한 사회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제 정세보다 작품에서 중요시되는 주제는 당대 여성문제와 여성의 자아인식이다. 당시는 신고전주의의 영향으로 고전주의의 원리로 받아들여지던 이성, 형식의 균일성이 예술적으로 강조되었는데 이러한 가치는 사회전반으로 확장되어 개인의 도덕적 기준이 권위에의 순종과 사리분별이 되었다. 또한 남녀 성역할의 분리가 심화되면서 남성에게는 자본력이, 여성에게는 내조, 우아미 등 이상적 아내의 역할이 강요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 역시 명확해졌는데 남성의 경우, 테일러링 기법이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남성복의 기반이 형성되었고 여성의 경우 신체우선형 복식을 통해 관능미보다는 자연스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여성 의복의 기본은 엠파이어 드레스라고 불리는 슈미즈 가운으로 허리를 조르던 기존 X자 형태의 드레스를 벗어난 원기둥형 복식이다. 고전주의의 영향으로 장식이 많이 감소되어 주름의 사용 역시 감소하고 소극적인 형태로 변화했으며 정통적인 장식성을 벗어나 유기적인 선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직접 리디아가 ‘제 모슬린 드레스의 터진 곳을 수선해 달라고 해 주세요.’라는 대사를 통해 당시 드레스에 거즈, 모슬린과 같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했음을 나타냈으며 화려한 색감보다는 흰색을 주로 사용하고 파스텔 톤의 색감을 사용하기도 했다. 소매로는 복식사상 최초로 짧은 퍼프 슬리브가 나타나 이에 따라 드러난 팔을 긴 장갑이나 숄 등으로 가렸다. 고대 그리스 키톤과 비슷한 수직적 형태로 인공적으로 부풀리는 장식이나 보조기구가 없으며 가슴 바로 아래 위치하는 허리선, 즉 하이웨스트 구조가 가장 큰 특징이다.
속옷은 슈미즈 가운이 유행할 때는 슈미즈와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엠파이어 드레스가 유행할 때에는 드레스 안에 슈미즈와 코르셋을 착용했다. 또한 보온 효과와 드레이프의 장식적 효과를 위해 긴 숄이나 짧은 스펜서 자켓, 르댕코트 등을 위에 덧입기도 하였다.
숄은 고전주의 양식의 영향을 받은 가장 특징적인 의상으로 고대 그리스의 히마티온이나 로마의 팔라를 모방한 숄이 있었다. 숄은 길고 다양한 색상으로 이뤄졌는데 처음은 보온의 목적으로 착용되었지만 이후 모피나 무늬 등이 추가되면서 주요한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모자는 보넷, 터번, 레이스 캡 등이 있었다. 보넷은 크기나 챙의 넓이가 매우 다양하였으며 리본으로 턱밑에서 묶어 고정시키는 구조였다. 여름용이나 산책용은 밀짚으로 만든 것이 가장 보편적이었고 겨울이나 정장용은 실크나 크레이프, 벨벳 등으로 만들었다. 깃털이나 꽃송이 등으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헤어스타일 역시 고대 그리스 로마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앞가르마를 탄 고대 로마스타일인 아 라 마도나(a la madonna)형이나 앞가르마를 타고 컬을 흐트러뜨리는 아 라 티투스(a la titus)형 등이 유행했다. 머리 장식은 고전적인 머리띠에 보석과 자수 장식을 하였지만 고전주의의 영향으로 보석의 사용량 역시 크게 줄었다.
신발은 비교적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는데 굽이 없는 슬리퍼 형태의 로마식 스트랩 샌들과 가죽 부츠, 마차용 새틴 신발 등이 있었다. 대부분 낮은 힐이다.



당시 가장 주요한 액세서리는 흰색 장갑으로 팔꿈치 바로 밑에 오는 긴 장갑과 깁 소매의 드레스와 함께 착용하는 짧은 장갑이 있었다. 이 외에도 슈미즈 가운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조그만 핸드백인 리디큘도 인기를 끌었다. 슈미즈 가운의 얇고 부드러운 소재 때문에 옷에 주머니를 부착하는 것이 어려워 여성들은 리디큘에 개인적 소품을 넣어 다녔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만들어진 복식의 이미지는 당대 여성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으며 이는 소설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청혼소식을 전할 때 그녀의 엄마인 베넷 부인의 “그 사람은 분명 대단한 부자고 넌 제인보다 더 좋은 옷과 훌륭한 마차를 갖게 되겠구나”라는 대사는 당시 복식이 사회적으로 지녔던 지위, 즉 부와 빈곤의 구분 역할을 가늠하게 해준다.
또한 ‘그녀는 딸이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위컴과 보름동안이나 동거했다는 수치심보다 딸이 결혼식 때 입을 새 옷이 없어서 당할 망신이 더 참을 수 없었다’는 심리묘사도 같은 당시 복식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밖에 ‘엘리자베스는 하인이 입은 옷을 보고 누가 오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거나 ‘엘리자베스 양이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나은 옷을 입으시면 됩니다. 그보다 더 좋은 옷을 입을 필요는 없습니다. 캐서린 영부인께서는 신분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걸 좋아하시거든요’라는 빙리 양의 대사 역시 당대 엄격한 신분질서 하에서 복식역시 철저히 계급이 나눠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는 근대로의 발돋움 속에서 문인, 예술가는 물론 대중사이에도 이성의 활용, 즉 과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대다. 이는 로맨티시즘과 대조적으로 정치, 사회윤리에 대한 비판의식과 풍자문학의 기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을 비판하고 복종적 여성상을 거부하는 작품을 다수 쓰게 되는데, 『오만과 편견』은 그 중에서도 여성의 결혼과 행복이 남성의 재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회통념에 대한 풍자를 담은 책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일반적인 여성과 달리 ‘여성적' 자질보다 ‘남성적' 자질이 눈에 띄는 인물로 싹싹하고 순종적이진 않지만 지성적이고 영리하며 상투적 관습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다.
당시 영국에서 여성을 가정의 전적인 수호자 역할로 여기는 관점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력을 상실하고 남성의 부와 권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여성은 생활 측면과 더불어 정신적 측면까지 나약한 의식 상태를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그들의 수동화된 의식을 각성시키고자 한 작품인 것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작가의 계몽적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페르소나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의 복식도 그녀의 사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상징성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식은 인물의 정체성을 사실적이고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대표적 비언어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분위기의 복식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경우 인물에 대해 통일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매우 좋은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영화와 소설을 종합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녀의 복식이 상당히 절제된 장식성만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동생, 언니가 엠파이어 드레스와 더불어 보넷, 장갑, 리디큘까지 착용하는 것과 달리 엘리자베스는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채도가 낮은 드레스를 입고 장신구도 거의 하지 않고 등장한다.


왼쪽에서 다섯 번째 인물이 엘리자베스다.


이는 그녀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운 복식을 선호하지 않음, 즉 허영적 성격이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 심플한 댄디즘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엘리자베스의 복식은 타인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삼가려는 ‘정숙성’, 자연스러운 ‘신체’의 강조, ‘성숙성’의 미 등의 변인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정숙성이란 인간이 복식을 통해 관심을 끌고 자신을 화려하게 표현하고자 하는지, 혹은 단순히 복식을 통해 사회와 융화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변인으로 엘리자베스는 전적으로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엘리자베스의 두 동생, 리디아와 키티가 ‘가게 진열장 안에 진열된 맵시있는 모자나 최신 유행하는 모슬린에 시선을 빼앗기고’, 아름다운 드레스가 자신의 결혼을 보장해줄 것이라 믿는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그녀는 신분에 맞는 검소한 옷차림을 하며 복식을 예의를 차리는 도구로만 이용할 뿐이다.
또한 신체의 강조는 신고전주의 이전의 로코코시대가 그러했듯 신체를 의복의 미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지(의복이 신체에 앞서는지), 아니면 온전히 신체의 미를 복식이라는 부속품을 통해 표현하는지(신체가 의복에 앞서는지)를 묻는 변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정숙성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녀가 기본적 드레스외의 장식을 최소화하고 레이스, 리본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식보다 신체를 더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체의 강조의 경우, 시대별 특성과 가치관에 따라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형태를 보이는데, 남성의 경우, 팔, 다리 등 신체의 강조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여성 복식의 경우 자연스러운 H형 드레스로 인해 어깨, 다리, 목, 가슴 등 다양한 신체부위가 강조된다.
남성이 활동성, 정력성으로 대표되는 젊음을 통해 사회적으로 우상시되었다면 여성에게는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이 극대화된 성숙한 시기가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성숙미는 영화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파스텔 톤의 의상보다는 채도가 낮은 적색, 갈색, 아이보리색의 의상을 활용하여 차분한 인상을 주었으며 레이스와 리본, 보넷 등의 발랄하고 순진한 이미지의 액세서리는 최대한 지양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영화 초반 연회색의 가벼운 의상부터 녹색, 적색을 거쳐 갈색의 숄로 변하는 그녀의 의상은 성과 계급, 첫인상에 대한 편협한 시선을 버리고 다아시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으면서 정신적인 완성을 이룩하게 되는 한편의 성장담을 따라 진행된다. 푸른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듯 그녀의 의상 역시 정신적 성숙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과 드라마 <오만과 편견>은 10년의 제작 시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극의 전개와 복식의 고증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다 긴 시간을 전제로 극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갔다면 영화는 시간적 한계 속에서 보다 남녀 로맨스에 치중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가 무도회에서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점, 베넷 씨에게 청혼 허락을 받으려는 다아시가 남성 복식을 정확히 갖춰 입지 않았다는 점 등은 고증의 한계로도 지적되는 부분이다. 그 밖에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드라마가 영국 지주, 젠트리 계급의 호화로운 전원생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 것과 달리 영화는 보다 시골의 한적함, 평화로운 자연성 등을 신고전주의적 측면에서 더욱 강조한 점이다.

드라마<오만과 편견>

이는 등장인물의 복식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드라마의 경우 무도회장에서의 여성의 보석 장식, 깃털과 꽃을 이용한 화려한 머리장식이 매우 돋보이지만, 영화의 경우 계급이 높은 빙리 양과 캐서린 영부인이라도 다소 절제된 장식만을 보여준다는 점이 큰 차이점으로 꼽힌다.

한편, 두 편의 영상 모두가 시대극을 장르로 삼아 복식의 고증을 강조한 것과 달리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블록버스터 액션을 주된 장르로 삼았고 그 속에서 시각적 쾌락, 색감의 조화와 즐거운 볼거리의 제공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논의점이 다소 다르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역시 19세기 영국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품과 의상이 다수 등장하지만 복식과 액세서리의 배치는 지극히 시각적 오락의 즐거움을 위해 구성되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좀비 피부의 갈색 톤을 중화시키기 위해 파란색과 초록색의상을, 빨간 머리의 배우에게 채도가 강렬한 파란 엠파이어드레스를 입히고 좀비가 되어 살육을 저지르는 인물에게 귀여운 레이스가 장식된 보넷을 씌우는 등의 오락적 감각이 그 것이다. 이러한 색채배열은 영화의 주제, 인물의 성격, 심리 등을 심층적으로 전달해주는 장치는 아니지만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살인과 전투장면의 심각성을 보색 대비로 희석시키고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복식이 비언어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배경 텍스트와 그를 인유한 다양한 층위의 영상 매체를 다룸으로써 복식의 평면적 기능뿐만 아니라 심층적 의미의 상징성까지 논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복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적 맥락과 권력 관계의 산물로 존재한다. 특히 신고전주의 복식은 노스텔지어적 복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노스텔지어’, 즉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감정적 무기 안에서 고대 그리스라는 시대 자체를 하나의 유행적 양식으로 만들어 사실보다는 ‘그럴듯한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런 류의 복식 재현에 대해 “죽은 스타일을 모방하고, 오늘날 가상적인 박물관에 저장된 모든 가면과 목소리를 통하여 잃어버린 과거를 찾으려는 절망적인 기도만을 반복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추상화되고 미화된 이미지 속에서 실제는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 역시 아름다운 복식의 고증과 영상미로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당대 19세기의 암울한 격변기를 감추고 과거의 낭만만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 속의 복식은 언뜻 표면적인 영상미만을 담당하는 듯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거대한 담론 하에서 권력관계를 조정하는 장치로 쓰이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신고전주의 양식을 기존의 억압적 사회에 대한 반항, 도전의 의미로 활용한 것과 같다. 엘리자베스의 옷은 더 이상 인간의 나체를 가리는 도구의 역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옷은 코르셋과 여성적 장식을 다 벗어버린 자유의 복식이다. 이러한 복식의 상징성은 특히 영화 속에서 인물이 대사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은 신념과 사상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상징적 복식은 영화의 언어적 장치와 별개로 복선과 암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서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 복식은 현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복식 사조다. 현대 패션의 복고지향적 특성이나 자연미를 추구하는 경향을 신고전주의의 미적 특성과 연관 지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적 복식의 흐름이 19세기부터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점 역시 가치가 있다. 당시의 대중적 패션의 시초가 현대의 아노니머스 패션, 즉 무명성의 패션으로 대표되는 거리의 자연발생적 패션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고전주의 복식의 엠파이어 드레스 형식이 현대의 웨딩 드레스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이는 엠파이어 드레스가 몸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여성의 늘씬한 몸매와 우아미를 강조하기 적합한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대 여성의 조신함, 정숙성 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복식 형태가 현대의 여성의 결혼 예식으로 쓰인다는 점은 아직도 결혼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압박이 존재하는지 재고해 볼만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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