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 앞
창문 밖으로 나무와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 댄다.
수없이 스쳐가는 인연처럼 흩어지는 풍경에
문 틈 사이로 바람이 인다.
바람이 분다.
이 기다란 통 안으로 바깥의 바람이 들어온다.
이 틈이 점점 거대해져 통의 커다란 구멍이 나는 건 어떨까.
어쩌면 이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영영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어째서 이런 섬뜩한 상상에도
그것이 그렇게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은 지 나는 잘 모르겠다.
걸음을 멈춘 지하철
당연하단 듯 열리는 문과 오가는 사람들
잠깐의 자유로운 상상은 이걸로 마친다.
열린 문에선 더 이상 바람이 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