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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Nov 13. 2023

<공터를 바라보며/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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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를 바라보며>


        

노동을 마치고 

낡은 컨테이너 사무실에 앉아 

하치장 뒤편의 공터를 바라봅니다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그곳은 

내가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버린 것들과 함께 있습니다

담배꽁초부서진 의자이불속청가전제품스티로폼 

빈 생수병부서진 유리재고타일통닭박스폐타이어 

그들은 먼지와 함께 반짝거리지만 

차라리 오래전 정지된 오후의 풍경 같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들이 

뙤약볕을 핥아먹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태양의 아들입니다

이름이 없으면서도 자유분방한 몸짓으로 

이름 있는 것들을 비웃기나 하듯 

부드럽게 서걱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름 있는 것들은 모두 

관념 속에서만 자라납니다

내가 줄기차게 쓰레기를 만들듯 

관념은 다른 관념과 만나 

새로운 관념을 잉태하고 

새로운 관념은 또 다른 관념과 만나 

관념의 새끼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버지

태양의 빛만이 공연을 합니다

오직 나만 햇볕이 두려워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듯 

그늘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늘조차도 아버지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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