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레스 새/최희철>5

스테인레스 새

by 최희철

<스테인리스 새/최희철>



언제부터 가로등 위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겨우 두 면(面)만을 가진 새가 우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반짝이는 것은 보았다. 반짝일 뿐이니 갇혀 있는 셈이다. 아니 갇혀있으니 반짝이는 것인가. 반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울한데 그건 독한 향신료 같은 것. 하지만 우울함이 언제 시작했고 또 어디에 배어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차라리 새를 포함한 주변의 나직한 공명(共鳴)이라고 하는 건 어떨까. 공명 속으로 마음대로 가로지르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지금 우울함이 반짝이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새가 말한다. 반짝임은 제법 오래된 것이라고 오래되었다니 무슨 뜻일까. 문명 이전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문명이 낳은 기술을 말하는 것일까. 대답조차 혼미하여 할 수 없이 나름대로 단정 짓는다. 그래 새는 어디서도 날아오지 않았다. 땅에서 기어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러니 저렇게 뾰족하지 뾰족하여 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나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었을까. 그렇다면 어떤 면을 우울하게 보았단 말인가. 자신도 잘 모르는 주제에 네 눈엔 겨우 두 면만 보이지, 반짝이는 면과 그렇지 않은 면 그게 울지 않는 면과 날 수 없는 면 등으로 전이(轉移)된 것이지. 햇빛을 사방으로 쏘아 될 뿐 소리 없이 조금씩 퇴색되고 있는 것이 새의 변천사라고 단정 지은 것이지. 그게 철학적 탐구라도 그건 잘못이었다. 잘 봐 깃털로 공기를 걸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빛의 알갱이 하나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받아 안으며 떨고 있잖아. 비바람 부는 날 그 떨림은 칼의 울음처럼 깊고 쟁쟁하지.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 중력을 뚫고 지구의 반대편으로 솟아오를 것 같은 하이 옥타브를 들을 때, 욕망의 비늘들은 순식간에 일어나 조루증 환자보다 더 빨리 사정(射精)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때가 정말 다른 존재들을 만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때이니 제발 곁으로 오지 마. 해질 녘 빚어낸 한 조각 서러움이 서산 낙조(落照)보다 짙어 그게 오히려 생애 전체를 차갑고 건조하게 할지라도 즉 삼류라고 비웃을지라도 그냥 둬 하지만 결코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울음을 끝까지 어떤 음색으로 들으려 했으므로 들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가로등 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로등과 함께 있는 것이고 자세히 보면 얼굴의 기관을 모두 닫은 채 내면으로 깊이 몰입하고 있을 뿐 새와 가로등은 하나다. 몰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던 그것은 선입견일 뿐이다. 그게 우울함의 단초를 다시 끄집어내려 하지만 순환 논법의 오류일 뿐 새는 늘 같은 자리에 있다. 새는 자리를 지키는 힘의 크기만큼 온갖 새들의 다양성을 가졌다. 다만 변방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런 긴장도 갖지 않은 채 가로등 아래를 무심코 지나치는 것인가. 지나치는 것이 새의 역할을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와 자신을 세상 속에서 조금씩 지우는 것이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온갖 새들은 먼 곳에서도 스테인리스 새를 스테인리스 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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