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아이처럼 놀고 울다.
<어느 베르그송주의자의 회상-4>
소풍, 아이처럼 놀고 울다
어머니가 ‘벌어서 모아 놓은 게 없다’고 투덜거릴 때 아버지가 변명거리로 내어 놓는 사진들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루 벌어 놀러 다니며 쓰기에 바빴던 것 같다. 특히 아버진 노름과 오입 빼고는 다 해 보려는 것 같았다. 마치 곧 통일이라도 되어 집으로 돌아갈 사람처럼. 그러고는 가끔 술에 대취하면 울었다. 아이처럼.
난 어릴 땐 나처럼 아이는 아이로 그리고 아버지처럼 어른은 어른으로 태어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인가 어른인 아버지가 아이처럼 우는 게 신기해 보였다. 울음이 아이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큰(덩치가 큰) 아버지가 비록 술에 취해서이겠지만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은 ‘나는 어떻게 되나?’하는 까마득한 걱정으로 밀려왔다.
나중에 그게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역사적 사건의 한 토막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도 눈물이 나왔다. 역사의 칼날 같은 단면 속에 던져진 아버지 그리고 북에서 내려온 분들의 ‘슬픈 울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