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현실
<문득-4>
김수영 전집2(산문) <1부 일상과 현실> 읽었다.
이사람 1921년에 태어나 1968년에 죽었으니 47년을 살았다는 건데, 의치(義齒) 얘기에 놀랐다. 잃어버렸다는 구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틀니’는 아니었겠지.
생계를 위해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쓰고 닭(1,000마리 가량)과 토끼를 키운 것, 파카 만년필에 대한 얘기, 여편네에 대한 무시와 험담 그리고 아이를 때린 것, 여성에 대한 관심과 오입한 것, 게으르고 돈에 허덕이며 사는 모습, 집수리 대금이나 번역료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것, 수도요금 때문에 수도국원과 싸운 것, 치질에다가, 술 먹으면 싸우고 주정을 부리는 것 등등 아무튼 재밌는 사람이다.
1) 김수영은 글 써서 돈을 버는 걸 ‘매문(賣文)’이라 했는데 그걸 치욕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걸 ‘매춘(賣春)’이라 한다면, 매춘은 자신의 ‘춘(春)’에 해당하는 걸 팔아 살아간다는 의미다. 그런데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의 ‘춘’에 해당하는 걸 팔고 있지 않나? 그게 노동이든, 지식이든, 예술적 재능이든 혹은 김수영이 말하는 글이든. 직업의 본질이랄까. 그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수사(修辭)로 보이는데, 그렇게라도 말해야 속이 좀 편해지는가 보다.
2) 1965년, 매달 100원씩 나오던 수도요금이 갑자기 2,600원이 나와 수도국원(요금징수원)과 싸웠는데, 알고 보니 검침원이 매달 직접 검침하지 않고, 대충 100원 나온 걸로 보고해 버려서 실제론 더 많이 나온 요금이 누적된 게 2,600원이었다.
난감한 ‘수도국원’ 붙잡고 싸울 게 아니라 조금씩 분할해서 더 내면 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1966년, ‘금성표 라디오’가 있고 전화통, 전기스탠드 같은 게 있었다고 하면 가난한 것은 분명 아니고 잘 살았다. 우린 전화기는 아예 없었고, ‘전기스탠드’는 이름조차 몰랐으며 라디오 대신 ‘스삐까(스피커)’라는 게 있어 어디선가 프로그램을 그걸로 들었다. 유선방송과 비슷한 구조.
그는 땅도 넓고 집도 있고, 하꼬방을 지어 세를 주기도 했으니 당시 중산층 이상이었나 보다. 예전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우암동 189번지>, 우리 집은 5평(2층 다락은 불법으로 올렸고), 주변 친구 집은 1.2평도 있었는데 말이다.
4) 여편네가 계(다네모시)의 오야(계주)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 모양인데, 이자 받는 날 약속 장소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분격하는 장면,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직접 차용증서를 받아 놓을 작정을 하고 있는데, 조금 전 옆에 있던 P(작고한 소설가 친구의 부인으로 이분도 소설가)씨도 본전의 절반 이상을 빌려 준 터라, 김수영은 최후에 활극까지 벌이고 그 과정에서 채무자 측에 두들겨 맞아 녹십자 앰뷸런스에 실려 갈 각본까지 구상한다.(이 작당은 김수영과 P가 같이 한 것)
엄마 따라 다네모시 모임 하는데 따라 간 적이 있었다. 종이쪽지에 자신이 부담할 이자를 적어 넣으면 가장 높은 금액을 적은 사람이 목돈 가져가고, 다네모시가 끝날 때까지 분할해서 이자와 원금을 갚는 구조다. 오야는 아마도 이자에 대한 혜택(이자 없음)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다네모시가 빵구 나서 오야가 돈 갖고 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모두가 내 어릴 때 같아,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