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문득-7>
싸움의 기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국내, 국외로 나눌 수 있고 문화, 계몽운동, 민족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비폭력이나 폭력(무장) 투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제국주의에게 얼마나 타격을 주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만주 무장투쟁으로 인해 일본제국주의는 심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활로를 뚫기 위해 진주만을 공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너무 과대평가 되어 있는 것은 ‘임시정부’와 ‘요인 암살’ 그리고 ‘시설 폭파’ 같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요인암살’이나 ‘시설폭파’는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로 하여금 조선 인민을 악랄하게 탄압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 같아, 전체적인 독립운동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된 게 아닌 가 생각한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온건함을 넘어 ‘안전한(?)’ 국외 운동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거의 타격을 가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임시정부는 요인암살, 시설폭파 등과도 결합되어 있었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 나중에 변절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변절의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밀정(密偵)’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처음부터 밀정이거나, 자신이 ‘밀정’이라고 밝히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밀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체포되었다가 풀려 나온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밀정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해 보면 일제강점기 때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는 독립 운동가들 역시 본의 아니게(?) 나중에 순결하고도 완벽한 독립운동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독립운동에서 체포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체포되면 자신은 물론 운동도 조직도 심지어는 독립운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인민’들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인암살이나 시설폭파 후 체포되는 것은 독립운동으로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실 그것은 ‘안전한(?)’ 국외 독립운동의 당연한 한계로 보인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독립운동 역할을 한 운동들도 조명되어야 한다. 가령 소작쟁의나 노동쟁의 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온건하고 단발마적인 운동들이 우리의 정통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정치란 인민을 위하고 불평등을 잘 해결할 사람이 누구인지 고르는 일이다. 그건 ‘기술’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 역시 예술이 아니고 기술(技術)이라는 말이고 그에 합당한 ‘기술자’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운동도 ‘싸움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