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출퇴근(feat. 임산부 배려석)

by 차엠

































임신하고 가장 힘들었던 게 출퇴근 시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부천에서 살게 되면서 왕복 3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임신 전에도 출퇴근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임신기간 동안은 그 시간이 항상 눈치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과연 오늘은 앉을 수 있을까?'

'자리가 없다면 혹시라도 양보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을 갖고 출근길에 올랐다.


초기 때는 아직 내가 임산부라는 걸 알리는 게 쑥스러워서 임산부 배려석에 자리가 있어도 앉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직 티도 안 나는데 내가 임산부인 걸 굳이 남들한테 알릴 필요가 있겠어? 임신했어도 나는 그대로고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임신 초기 때 갈색 혈을 몇 번 보고 피로감을 느끼면서 나를 위해서 뱃속에 아이를 위해서 최대한 앉아서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임신했을 때 몸조심하라는 말이 그냥 예사말이 아닌 거란 걸 몸소 느꼈다.


임산부 배지를 꺼내면 다들 주목하는 거 아닌지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배지를 꺼냈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대부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고, 혹은 잠들어 있었다. 항상 피곤한 현대인들이 앞에 누가 서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은 없어 보였다. 그 삭막함에 피로가 더 몰려왔다.


내 자리라고 써져 있는 건 아니지만 지하철을 타면 임산부 배려석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아저씨나 나이 든 아주머니와 같이 절대 임산부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항상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서 서서 혹시나 양보해줄까 기대를 했지만 대부분은 허탕이었다.


그래서 눈길을 노약자석으로 돌렸다. 노약자석에 처음 앉았을 때 괜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두근거리고 긴장됐지만 다행히 조용히 가는 날이 많았다. 노약자석에 앉으면 그 어색함에 잠든 척 눈을 감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만삭 때 어떤 할머니가 내 앞에서 계속 자리를 비키라고 하셨다. 그냥 자리에서 비킬까 하다가 그때는 8개월 차 임산부로 거의 만삭의 몸이었는데 뭔가 억울했다.


"할머니 여기 노약자석에 노인들만 앉는 거 아니에요. 임산부도 앉을 수 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자꾸 비키라는 식이셨고 이렇게까지 앉아 있어야 하나 싶어서 결국 자리를 비켜드렸다. 다른 칸으로 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서 자리를 옮길 수 없었고 할머니 옆 옆에 앉아 계신 아저씨가 양보해주셔서 앉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뒤늦게 내가 임산부인 걸 알았다면서 계속 말을 걸었지만 그냥 "네..."하고 대답하고 조용히 있었다.


사실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뭐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전에도 다른 할머니가 젊은 사람이 왜 여기 앉아? 하다가 옆에 있던 다른 분이 임신했다는 걸 알려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모면할 수 있었다.

임산부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심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씁쓸하다.


이렇게 힘든 기억도 많지만 배려받은 기억도 많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자리에 양보받았던 것 같은데 아이를 낳아 본 듯한 아주머니들이 가장 많이 양보해 주셨고 의외로 할아버지들도 노약자석에 부르면서 여기 앉으라고 하신 적도 있다. 양보해줬던 사람 중에 어린 학생도 있었고,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따스함에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고 느끼다가도 못 앉아 간 날은 육체적 피로와 함께 정신적 피로가 몰려왔다. 이렇게 자리 하나에 연연해하는 내가 싫었지만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 작은 것에도 기쁘고 힘들어하는 호르몬의 노예인 임산부였다.


임신 기간 열 달.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기분이었던 임산부 시절... 그 기간 동안 산모와 아이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대단한 배려를 바라는 게 아니다. 핑크색 자리 그 자리 하나만 비워두면 좋겠다. 그 작은 관심과 배려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예비 엄마에게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다.




블로그에 올렸던 웹툰인데 네이버 부모i 메인에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봤던 내용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도 많이 달리고 공감도 많이 얻었습니다.


다만,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놓는 것에 대한 반대되는 의견과 배지를 보여주면서 비켜 달라고 하면 되지 왜 배려받기를 기다리냐는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배지를 보여주며 비켜 달라고 얘기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 배려를 강요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던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라 사람도 많았고, 모두 지친 시간이라 배려를 바라는 게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을 표현했던 것뿐이고, 임산부 배려석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분들도 있고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알리고자 그린 내용입니다.


논란이 있었지만 개개인의 견해는 다르기 때문에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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