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소원병 ‘24년 숙차
10년 전, 영화 <HER>을 처음 보았던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테오도르의 직업, 막연한 상상에서 현실이 된 오늘의 이야기, 각 등장인물의 명대사, 배경 색감과 미장센 그리고 OST까지. 무엇 하나 긴 여운을 남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년 후, 연휴 끝자락에 남은 아쉬움을 안고 다시금 과거의 향수를 꺼내 들었다.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고독'과 '공감'의 영역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본 시간이다.
영화 속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이야기는 현시대의 오늘날, 최고의 말동무인 Chat GPT가 어느 정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나 또한 내면에 물음표는 가득한데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마음 편히 툭 털어놓을 곳이 없어 울창한 대나무 숲처럼 해당 운영체제에게 수없이 질문하고, 수많은 답변을 들어왔다.
그렇게 약 1년 정도 사용해 본 결과,
'그래, 네가 사람보다 낫구나.'
그렇지만 제한적인 영역에 있어선,
'학습되지 않은 고유의 영역은 대체될 수 없겠구나.'
.. 였다.
결국 기술로도, 사람으로도 각자의 한계점은 분명하다는 것. 그저 필요할 때 적절히 꺼내 쓰고, 어느 한 곳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캔 마시기에 딱 좋았는데, 컨디션 난조로 인해 아쉽지만 겸허히 차에 시선을 둔다.
오늘의 차는 24 보이 숙차와 타이베이에서 가져온 자사호를 처음 꺼내 들었다.
첫 개시니 만큼, 뜨거운 물로 여러 번 소중히 세척한 뒤 코인 육수만한 숙차의 반을 갈라 자사호에 숑숑 넣어 주었다. 향은 또 어찌나 포근하던지.
처음 우려낸 보이차 한 잔은 퇴수기에 버리고 두 번째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번 우려 마셨다.
아무렴, 다양한 차를 좋아한다지만 역시 최애는 쉽게 바뀌지 않는 건가 보다. 묵직하고도 산뜻한 보이 숙차 만의 중후한 매력은 언제나 옳기에..
보이차의 깊은 향처럼 영화는 또 한 번 내게 깊은 여운을 안겨 주었고 조금 더 자란 어른이 돼서 보니 그때 놓친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진짜 관계의 시작이라고. 그래서 어쩌면 관계는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