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로 씨

by 차로

왜 마로 씨라고 부르세요?라는 질문을 꽤 받았다. 우선 ‘마로’는 길고양이 보호센터를 거쳐 임시보호자님께서 돌보고 있을 때 지어진 이름으로 알고 있다. 나의 필명도 ‘차로’인데 어쩌면 같은 끝글자를 쓰는 이름에 더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똘망똘망 구슬처럼 빛나는 당시 사진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스르르 녹는 듯하다.


처음 마로가 내가 사는 집에 도착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사진에서 본 것과 다르게 덩치(?)가 있었고, 임시보호자님이 쓰다듬는데 털이 우수수 묻어났던 장면. 그리고 임시보호자님은 내게 여러 고양이 물품을 주시며, 안전용 장갑도 주셨다. 성격이 소심하고 경계심이 커서 물릴 수도 있다고…(?)


며칠 동안은 밥도, 물도, 화장실도 가지 않던 마로. 숨숨집에 숨어서 맨날 하악질만 하고, 우연히 나와 마주치면 소파 밑으로 도망갈 정도였다. 그렇게 소파 밑 생활(?)을 한 달 정도 하는데, 이게 부모 마음인가 느껴질 정도였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예민한 고양이들은 결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관상묘’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츄르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고 소파 앞에 엎드려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며칠 뒤, 이럴 바엔 차라리 소파 밑 공간을 없애서 강제로 숨숨집에서 머무르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로가 나오는 걸 확인한 후 소파의 아랫다리 부분들을 돌려서 모두 빼내버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꼬리를 동그랗게 말면서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맥이 탁 풀리면서 웃음이 났다. 이제야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몇 번의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지나 어느새 마로가 나에게 온 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아프면 마로의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해?라는 생각이 내 마음 정중앙에 있는 듯하다. 며칠 여행이나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는, 꼭 마로에게 먼저 이야기를 한 후, 펫시터 선생님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표정과 말투의 변화로 어쩌면 이제는 얼추 눈치채지 않았을까.


누군가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마치 언젠가 맞이할 커다란 슬픔을 키우는 것과 같다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될 아픔이지만, 이 생에 머무는 동안, 아니 나의 곁에 머무는 잠시의 순간만큼은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안전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로 씨가 사라진 이후의 삶은 아직 생각하지 않으려고. 오지 않은 일 때문에 미리부터 울지 말고, 그 시간에 사냥놀이를 하고 간식을 더 챙겨주자.


(아! 그리고 마로 씨라고 부르는 이유는, 집고양이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벌써 나와 동갑이 되어서이다. 그러니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마로 씨라고 불러야 맞다!)


마지막으로 2025년 여름의 마로 씨 모습을 끝으로,

이 글을 맺는다.





마로 씨.

어쩌면, 아니 내 삶의 구원묘.

(고양이니까 구원‘자’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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