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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Jul 08. 2019

이상한 나라의 “유익한” 신입생 교육

늦깎이 신입사원 잔혹사

신입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신입은 아무것도 모른다. 공부를 하느라 엉덩이에 굳은살이 좀 박혔을 수도 있고, 알바로 다져진 잔뼈가 제법 굵을 수도 있으며, 인턴으로서 수박 겉을 힘차게 핥았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실무랑은 하등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고로 신입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의 몸을 하고 입사하기 마련이다. 그런고로 회사는 "윈도우도 설치 안된 천연의 조립컴퓨터" 같은 신입을 데려다가, 윈도우를 설치해 주고, MS 오피스를 깔아주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v3 백신을 깔아주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입생 교육”, 군대로 따지면 논산에 있는 신병 훈련 같은 것이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이나 지속되는 지리멸렬한 교육을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쓸 데 없는 교육을 왜 하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신입생 교육은 의외로 굉장히 유익하다. 얼마나 유익하냐 하냐면은, 일요일 점심 즈음에 하는 “출발 비디오 여행” 만큼이나 유익하다. 뭘 봐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힐 때에는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면 된다. “출발 비디오 여행”은 여러 영화의 액끼스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므로 시청 후에는 어떤 영화들이 볼만한 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다만 재미없는 영화도 너무 재미있게 과대 포장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신입생 교육에서도, 출발 비디오 여행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진다. 각 부서의 대표들이, 우리 부서에서는 이런 일을 하노라고, (마찬가지로 안 좋은 점은 쏙 빼고) 교육을 한다. 출발 비디오 여행의 진행자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말발로, 재미없는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점은 좀 다르지만, 대충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감을 잡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게 유익하다.



도를 아십니까? 도(道) 란 모름지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뒷담화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요, 심한 경우 부모님의 교육 방침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건지. 쯧).  술을 마실 때에 [주도]가 있는 것처럼 직장인으로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으니, 이 또한 신입생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에는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지, 식당에서 "상석"이라는 어느 자리를 말하는지,  상급자가 운전할 때와, 하급자가 운전할 때에는 그 "상석"이라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등을 말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일관적이지도 않지만 (회사마다 [도]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도 많다) , 그래도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통용되는 [도]라는 것은 있는 듯 하니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다. 회사에는 본인의 기준에 본데없이 구는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신입생 교육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이 회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 준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라는 교육을 해 주는데,  “그런 일을 했다가 짤린(!) 사람”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 준다. 그런고로 신입생 교육을 듣고 나면, (뭘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뭘 하면 해고되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짜내고 또 짜낸 휴롬 액끼스 같은 신입생 교육의 유용한 점이다. 장점을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응당 단점도 이야기해야 공평하겠지. 다음 글에서는 신입생 교육의 쓸모없는 점, 아니 쓸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안 하느니만 못한 점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


(나를 포함한) 우수한 인재를 모아 놓고
어째서 이런 교육을...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교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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