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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Jul 08. 2019

이상한 나라의 “무익한” 신입생 교육

늦깎이 신입직원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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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웹툰 중에 “지옥 사원”이라는 웹툰이 있다. 이 웹툰에는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창업주(대기업 회장님)의 일대기를 교육받는데, 이건뭐, 거의 이순신 장군 위인전 수준이다. 



[출처] 다음 웹툰 "지옥사원" 중 장면.


나는 이 부분이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 실화입니다.


대기업 회장님 일대기는 당연히(!) 교육에 필수로 포함되어 있단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못 숨기는 나에게, 그 말을 해준 대기업 다니는 친구가 말했다.


“그뿐만이 아냐,
우리 기업 야구팀 우승한 년도도 배워.”




이순신 장군 위인전이 '애국심' 때문인 것처럼, 회장님 위인전은 '애사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장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누군가는 애사심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안생겨요.


누굴 바보로 아나 싶다. 백번 양보해서 회장님에 대한 존경심+1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애사심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불어 “안생겨요”를 외치고 싶은 것은 "창의력 수업"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도합 12년 동안 주입식 교육을 받아오고, 주입식으로 배운 것 마저 대학 4년 동안 까먹었는데(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창의력이 이 교육 한 시간으로 생길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신입생 교육에서는 레고를 조립하게 시킨다거나, 높은 곳에서 전구를 떨어뜨리는 실험 등을 하면서 몇 시간 만에 창의력을 기르려고 한다. 참, 양심도 없지.  




일명 “과한 교육” 들도 있다. 필요 한건 인정 하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교육들.

나의 경우는 [인사][전화받기]가 그러했다.  


일단 인사. "안녕하십니까" 할 때 그 인사 맞다. 아래는 내가 신입생 교육 때 받은 교육의 내용이며,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15도 인사 30도 인사 등 인사의 [각도]를 배운다.

그러니까, 언제 30도 인사를 해야 하는지, 언제 15도 인사를 해야 하는지, 각 인사는 몇 초 정도가 적당한지 등을 배운다. 더불어 어느 쪽 손이 위에 올라가야 하는지도 당연하게 배운다.

그리고 배운 인사를 짝꿍과 함께 [실습] 한다.

그냥 대강 실습하는 것이 아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허리를 숙이고 그 자세로 멈춤! 하면 강사가 돌아다니면서 자세를 고쳐 준다. 아래는 교육에서 내가 실제로 받았던 코멘트이다.


차아로씨! 그건 15도가 아니라 20도 정도 돼요. 좀 더 들어야 15 도입니다.
그 정도는 거의 60도잖아요. 30도가 아니에요. 허리를 좀 더 펴세요.


상체와 목이 일직선이 되야죠. 고개를 너무 숙였잖아요.
(마음의 소리: 거북목인걸 어떡해요!)

  

   

[출처] 다음웹툰 "지옥사원"  [66화]. 과장된 만화적 상상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장면도 실화였다.


허리와 어깨가 뻐근했다. 내가 지금 신입생 교육을 받는 건지, 요가 클래스에 온 것인지 혼란스럽다. 인사? 중요한 건 인정한다. 인사의 중요성을 폄훼하려는 것은 전혀 아님을 밝혀둔다. 하지만 영업직이나 서비스직이 아닌 내가 인사를 하게 될 상황은, 화장실 가는 길에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치는 경우나, 가끔 결재를 받기 위해 상급자에게 찾아갔을 때뿐이다. 그때, 나의 몸이 15도나 30도를 기억할지 의문이다. 아니 애당초 인사를 받으시는 분이 각도를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도로 인사를 한다고 해서, 3초를 못 채우고 허리를 편다고 해서,

저런 저런! 20도로 인사를 했잖아? 무슨 근본 없는 인사야?
게다가 어떻게 3초도 안돼서 허리를 펼 수가 있어?


이럴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전화응대]도 마찬가지이다.  근본 없는  "(도레미파)솔"톤이 무엇인지, 자꾸 솔톤으로 받으라고 하는데, 모두가 절대 음감도 아니고 "솔"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밝게 받으라는 건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자꾸 나에게 [과한 밝음]을 요구한다.


안녕하십니까아~
어디 어디 부서↗ 아무개 입니다아~


참고로, 입사한 지 9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저렇게 전화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그 밖에도, 딴지를 걸고 싶은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본인 딴에는 유머랍시고)성희롱에 가까운 예시를 들어 설명하거나, 기타 등등.  하지만 불평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유익한 점 3개, 무익한 점 3개 정도네서 아름답고 공평하게 마무리해야겠다.


사실 익명의 힘을 빌려 대차게 까발리는 것도 기껍지만은 않다. 신입생 교육 도중 우연히 마주친 높으신 분이 "교육은 어떻더냐"고 물었을 때, 권력에 주눅 든 난 앙큼하게도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매우 유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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