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수호하는가, 위협하는가
"민중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Democracy) 사회에서 "참여"는 핵심적인 사유이자 실천이다. 모든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과 계약 아래,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투표 행위는 가장 기본적인 참여로 이해된다. 나아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 원칙 아래 시민참여는 더욱 다양해졌고 그 규모도 확장되었다. 공론화위원회, 주민참여예산제도 등의 제도적 시민참여가 이루어지고 주민자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도 발전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근 포퓰리즘의 등장은 시민참여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을 수 있을을 보여준다.
참여는 민주주의를 관통하는 개념이다. 대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모두 그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는 핵심 통로가 '참여'이다. 투표권, 이성적인 토론, 직접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고려하여 시민으로서 다양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 특히 엘리트주의와 밀월 관계를 갖는 대의민주주의는 평범한 다수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정치적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민참여를 보다 강조하는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부상했다. 둘 다 참여를 전제로 하지만 누가 참여해야 하는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주장이 달라 갈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김주형(2018)이 이러한 갈등을 잘 요약하고 있다.
"만약 일반 시민들을 넓게 포함시키고 이들에게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하는 데에 집중할 경우, 자칫 차분한 숙의가 어려워지면서 이성적인 토론과 균형 잡힌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참여의 극대화가 숙의의 결핍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숙의의 질과 사려 깊은 결정에만 너무 초점을 맞출 경우, 시민참여단이 외부의 일반 대중들과는 유리된 다른 의미의 엘리트 집단처럼 기능할 위험성이 있다. 숙의의 가치가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표성과 정당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참여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김주형, 2018: 83)
이성적인 토론과 균형 잡힌 판단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의사결정권을 강조할 것인가? 또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대표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그것에 따른 결정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등의 논의들이 있다. 이 논의들에서 '참여'는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시민의 권한부여(empowerment)를 강조하는 참여 민주주의가 잘못 과열되면 '포퓰리즘'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하상응(2025: 44-45)는 포퓰리즘이 "국민 주권과 정치참여 확대라는 긍정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긍정하지만, 동시에 포퓰리즘의 "배타성과 획일성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원칙과 상충"된다고 비판한다. 즉, 참여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시사하는 정치참여의 이중성은 수 많은 참여의 얼굴들 중 일부이다. 참여는 과학기술과 환경, 문화 등의 여러 영역에서 구체적인 제도와 현장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실천된다. 참여의 문법과 맥락은 우리가 오늘 논했던 참여의 이중성으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다양한 참여의 얼굴들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참여의 이중성을 넘어 참여의 다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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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2018). 숙의와 민주주의: 토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공론화위원회. 현대정치연구, 11(3), 69-104.
하상응. (2025).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참여와 숙의의 딜레마. 시민과 세계, 46, 3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