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여의 곤란함

목적과 제도화, 희망과 비판 그 사이에 존재하는

by 게으른대학원생

"Participation trouble us" (Kelty, 2017: 77)


문화인류학자 Kelty는 참여가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던진다. 무슨 의미일까? 그는 참여가 민주적 규범으로서 언제나 열망적이고 따라서 그 정당성을 보호받지만, 참여는 늘 목적과 제도화, 희망과 비판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참여의 이중성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답은 바로 "참여의 문법(grammar of paticipation)"에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가 사용되는 조건과 상황, 즉 언어가 사용되는 삶의 형식 속에서 언어의 의미를 떠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참여의 의미 역시 참여를 구성하는 주체와 형식뿐 아니라 그것이 구성되는 특정한(사회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는 참여의 수행성, 즉 참여의 문법을 재독해하고 재형성하는 일련의 수행적 실천들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참여의 의미를 생성하는 문법의 논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특정한 매개물로서의 참여가 아닌, 참여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식견을 넓혀준다.


지난 번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참여는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elty의 관점에서 이 주장은 참여의 희망과 비판의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희망적 실천으로 긍정되는 동시에, 과한 열망적 참여로 인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비판적 독해의 대상이 된다.


쉬운 예로 탄소중립에서의 시민참여에 주목해보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시민참여에 기반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흔히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박정미, 2025). 여기서 참여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규범적인 열망의 언어이다. 반면 2021년에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 탄소중립시민회의는 "기술낙관주의"와 "시장낙관주의"로 가득 찬 주제, 기후재난에 취약한 농민, 노동자 등이 포함되지 않은 시민사회의 무차별 구성 등의 이유로 "민주주의 없는 시민회의"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구준모, 2021).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참여의 열망이 제도화되면서 참여의 의미는 되려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비판의 언어로 전환되었다. 참여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제도적 시민참여는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행정의 도구로 참여를 동원하는 아이러니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은 동일한 형상이 ‘오리’이자 ‘토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인식의 양가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그림의 실체는 변하지 않으며, 해석의 가능성 또한 둘 중 하나로 제한된다. Kelty의 ‘참여의 문법’ 역시 이와 같다. 그는 참여가 희망과 비판 사이를 오가며 민주주의의 문법을 구성한다고 말하지만, 그 문법은 여전히 이중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 참여는 다양한 주체, 형식, 이슈, 맥락의 상호작용 속에서 훨씬 다중적이고 수행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참여의 제도화는 관료적인 경직성과 일시적인 시간논리로 인해 양적 증가와 동시에 질적 수준의 우려를 불러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참여를 일상화하는 동시에 비자발화한다. 시민참여는 이제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기보다 행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통치의 기술로 기능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실과 규범, 과학과 정치,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그 어느 것 하나를 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연결과 관계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복잡함을 더이상 단순하게 볼 수 없다. 참여를 관통하는 하나의 보편적 논리에 기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가 참여를 불러왔으나, 아이러니하게 참여가 다시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가 되었다. 즉, 참여는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그 곤란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충분히 성찰하고, 사유하며, 논의하는가?



Kelty, C. M. (2017). Too much democracy in all the wrong places: toward a grammar of participation. Current Anthropology, 58(15), 77-90.

박정미, 2025.04.28 “탄소중립 실현, 에너지 민주주의 거버넌스 구축 시급”, 환경일보

구준모, 2021.08.09, [왜냐면] 반론: '탄소중립과 노동전환' 민주주의 없는 거버넌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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