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기술과학화(Technoscientization)
197-80년대는 과학기술 관련 논쟁(eg. 광우병, GMO 등)에서의 참여가 정책적, 정치적 과제로 부상하는 참여적 전환(Participatory Turn)의 시기였다. 그 이후 참여는 과학기술 및 혁신 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적 행동이자 행정적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기술 및 혁신의 민주화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확실히 그렇다 라고 완벽히 긍정하기는 어렵다. 숙의적 참여(시민배심원, 합의회의, 공론화위원회), 시민과학, 리빙랩, 해커톤 등 수 많음 참여의 형태들이 존재하고 확산되는 동시에, 이들을 둘러싼 비판적 시선 역시 존재한다.
앞으로 총 3번에 걸쳐 참여를 문제화(problematization)하는 학문적 움직임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과학기술학과 혁신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논의 역시 그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 첫 번째로, VoB and Amelung (2016)은 민주적 통제를 목표로 제도화된 참여가 되려 그 통제 안에 자신을 가두는 현실을 참여의 기술과학화(Technoscientization)라고 명명한다.
“기술 관료주의에 대한 대안적 통치 방식으로 제시된 참여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절차를 기술·과학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여러 형태의 성찰적(reflexive) 참여에 직면하면서, 설계 문제를 다시금 우려의 대상으로 되돌려놓았다.” (VoB and Amelung, 2016:: 749)
이 논문에서는 과학기술 관련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숙의적 시민참여로서 시민패널(citizen panles) - 플래닝 셀(planning cell), 시민배심원(citizen jury),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 의 여정(journey)을 따라간다. 세가지 참여 디자인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처음의 이슈와 지역, 국가, 정치문화로부터 더 멀리 뻗어나가게 되었다. 시민패널의 초기 목적과 기능이 사라지고, 다른 맥락에 따라 변형되고 하이브리드화되었다. 플래닝 셀과 시민배심원은 1990년대 초에 영국의 Institutue of Public Policy Research(IIPPR)에 의해 “citizens’ jury”로 통합되어 광우병과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참여의 도구로 간주되었다. 덴마크의 Danish Borad of Technology에서 기술영향평가 방법으로 개발된 합의회의는 덴마크를 넘어 네덜란드, 영국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한국은 1998년 유전자조작식품, 1999년 생명복제기술, 2004년 전력정책, 2007년 동물장기이식 이렇게 4차례의 합의회를 진행한 바 있다.
지역적 단위에서 시작된 초기의 대중참여 방법들에서는 참여의 제도화에 대한 지식이 암묵적이었으나, 처음 태동한 맥락을 벗어나면서 서로 간의 경험을 공유하며 암묵적 지식들을 형식지로 개발해 나갔다. 이어서 대중참여 방법의 조직 및 구성에 관한 형식지를 개발하기 위한 비교 연구, 평가 기준 등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대중참여 방법론의 이론적 근거로서 숙의 민주주의 등의 이론을 연결하고, 인식론적 권위를 지닌 전문가 공동체를 만들어 대중참여 방법의 기능과 효과성을 실험하고, 유럽위원회(EU)와 같은 초국가적 기관들을 중심으로 제도적 디자인 개발을 촉진하고 큰 규모의 실험을 촉진한 것이다.
대중참여 방법인 시민패널의 혁신여정을 탐구한다는 이 연구의 목표는 참여 그 자체가 "혁신"의 대상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정책연구자와 실무자들이 참여를 기획하고 설계, 실행하는 과정에서 "참여" 그 자체는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누구를,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어떻게 효과적인 시민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가? 어떻게 시민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에 일정한 답을 내놓지 않고는 참여를 기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과 국가, 정치문화를 횡단하며 이러한 문제들은 참여적 실험의 맥락에서 다루어졌다. 그 가운데 참여는 "실험, 개발, 확산, 평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용어들은 흔히 과학기술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언어들이다. 과학기술을 실험, 개발, 확산, 평가하듯, 참여도 그러한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여의 기술과학화는 절정을 이루었다. 참여가 민주주의의 기술이 아닌 거버넌스의 기술이 된 것이다. 전문가 집단의 평가에 의해 "좋은 참여란 무엇인가", "이상적인 시민의 참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배적 담론이 형성되어, 이에 기반한 통치기술로서의 참여적 절차가 다시 실험되고 개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참여는 과학기술과 혁신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를 위한 실천이 아닌, 정책결정의 정당화와 혁신에 대한 신뢰 회복의 전략적 수단이자 표준화된 절차로서 기능한다. 참여의 기술과학화는 참여의 도구화와 공명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학이라는 학문은 과학기술을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이성적 관점을 비판하며, 시민참의 민주적 규범성을 주장해왔다. 과학기술은 단지 도구 그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의제와 뒤얽히며 구성되기 때문에,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과학기술학에서 참여는 과거 과학기술이 비판을 받았던 것과 같은 이유로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참여의 증식이 민주주의의 건강한 확산을 불러오기보다, 초기 민주적 열망의 쇠퇴와 함께 참여의 도구적 특성을 남용하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는 참여가 특정한 목적(정책결정의 정당성 강화, 혁신에 대한 신뢰 회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참여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비판이자, 동시에 참여에 대한 연구들이 참여를 하나의 고정적 실재로 간주하고 그것의 효과성에만 천착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참여의 구성적, 수행적, 공동생산적 특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참여가 기술과학화된 맥락의 연장선이다. 비판적 STS 연구들이 과학기술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왔던 것과 비슷하게, 참여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된 것이다.
Voß, J. P., & Amelung, N. (2016). Innovating public participation methods: Technoscientization and reflexive engagement. Social Studies of Science, 46(5), 749-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