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참여를 문제화하기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로서 참여

by 게으른대학원생

라투르는 "비판은 어디에 있는가?" 질문하며 20세기의 사회비판을 '비판'한다(Latour, 2004). 그는 비판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허위의식에 대한 폭로와 사실(또는 사물)에 대한 해체에서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20세기 이후 사회비판은 ‘사실’의 권위를 해체하고 모든 것이 구성된다고 말해왔다. 사실의 지위는 바닥을 쳤고 결국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실들은 모두 구성된 것, 과장하여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음모론(Conspiracy)을 마주한 배경이다. 음모론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사실의 권위적 지위를 내려놓게 만들고 그것을 해체하려 했던 비평가들의 지적 작업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나아가 그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음모론이 활기치는 21세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음모론을 낳은 비판의 도구를 여전히 고수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실들을 해체하고 그 베일 뒤에 가려진 온갖 허위의식들을 폭로하며 순진한 대중들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어야 하는가? 어두웠던 그들의 눈이 잠시 밝아졌을지 몰라도, 그 눈이 초점을 잃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의 눈에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라투르는 20세기 비평가들의 지적 작업이 대중을 해방시키기 보다, 되려 그들로부터 현실성을 빼앗아 갔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구성주의와 해체주의의 넘침 속에서 사실 또는 사물에 대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더 이상 믿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라투르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비판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관심(concern)"이다(Latour, 2004)


관심의 문제로서 사실 또는 사물을 본다는 것은, 사물이 어떻게 조립(assemble)되는가 탐구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사물이 일종의 집합(gathering)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집합으로서의 사물은 네트워크 속에서 출현(emerge)하기 때문에 부분적(partial)이며 따라서 취약하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사물은 견고하다. 사회구성주의자들이 과학기술의 사회적인 것으로 설명하며 과학기술을 탈신비화했지만, 과학기술은 여전히 수많은 연합들에 의해 견고하게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사물들은 주술적 대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고, 단순히 무의식적 행위의 자명한 인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하다.” (Latour, 2004: 242)


그렇다면 참여를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참여에 대한 비판연구를 '비판'하고 새로운 비판의 무기로 참여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 현실성을 더하는 관심(concern)을 활용하자는 의미와 같다.


대중의 과학기술 참여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STS학자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안착하고 팽창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례연구를 통해 참여적 지식활동의 생산적 가치를 보여주고, 민주주의 이론에 기반해 과학기술 관련 의사결정에서의 대중참여가 지니는 정치적 가치를 옹호하며 맺은 결실이었다. 참여적 전환(Participatory turn)은 이러한 결실의 기점이 제도적 변화로 이어진 때이다(Jasanoff, 2003). 그러나 대중참여가 제도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시민들의 참여가 과학적 합리성,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정당화와 얽히기 시작했고,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지지했던 STS 학자들은 이러한 참여의 도구화, 형식화와 탈정치화를 비판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라는 외피를 걸친 참여가 실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Irwin, 2006). 즉, 참여의 실체는 여전히 전문가주의에 의해 무지한 대중들이 끌려 다니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참여의 틀을 제약하고, 정치적 합리성이 참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참여는 진정한(authentic) 또는 의미있는(meaningful) 참여가 아니었다. 이러한 비판은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 환경, 혁신의 거버넌스 속에서 시민들은 계속해서 참여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직접 자연을 돌보고,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 과정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이러한 참여는 비판의 도마 위에 놓이기를 반복했다. 문화인류학자 Kelty(2017)가 주장했듯, 참여는 정말 민주적 열망과 비판의 언어 사이를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 볼 수 있다.


“참여는 공허한 대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고, 단순히 무의식적 행위의 자명한 인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하다.”


즉, 참여를 향항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열망은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것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의심하며, 전문가주의,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그것을 비판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참여는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새로운 비판적 관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의 취약성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참여가 너무 강력하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참여는 수많은 인간, 비인간, 제도, 문화, 상상 등으로 연결된 집합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참여는 동시에 취약하다. 참여는 집합체를 이루는 네트워크 속에서 출현(emerge)하는 국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Andersen과 동료들(2015)은 참여적 디자인에서의 참여를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며, 참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과정 중에 있는 실천"이기 때문에 "참여의 불완전성과 모호성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가지고 참여를 연구하고, 조직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259).


결국 대중참여가 비판적 논쟁과 정치적 열망 사이의 "이중적 교착상태(double impasse)"를 벗어나기 위해서(Irwin et al, 2012), 우리는 참여를 더 이상 사실의 언어가 아닌, 관심의 언어로 다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 참여에 가까이 다가가서 참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관심(concern)을 가져야 한다. 실제 참여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참여는 어떤 정치적 효과를 낳고 있는가? 실제 누가 참여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참여의 정치적 공허함을 외치며 그것으로부터 현실성을 빼앗고 정책입안자와 현장실무자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기존의 비판을 넘어서야 한다. 참여라는 집합체를 이루는 인간과 비인간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실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댜 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여를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nr)의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이자, 그 의미이다.


실제 인터뷰를 통해 참여경험이 있는 시민들을 만나면, 그들도 참여의 구조와 맥락을 부분적으로 비판하지만 동시에 참여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보인다. 그 때마다 간혹 생각했다. 이들이 놓여저 있는 구조적 위치와 경제적 맥락을 비판하면 무엇하는가? 그것이 이들에게 실제 어떤 도움이 될까? 정말 효과적인가? 또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실무자들은 그들만의 비전과 보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에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로 비판하려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게으르게 연구를 하려던게 아닌가?


참여를 집합체로 본다는 것은, 대중 역시 집합체로 본다는 것이다.

집합체로서의 대중은 취약하지만 동시에 강력하다.

대중참여를 관심의 문제로 본다고 해서, 시민사회의 힘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우리도 참여를 관심의 문제(matter of concern)로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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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our, B. (2004). Why has critique run out of steam? From matters of fact to matters of concern. Critical inquiry, 30(2), 225-248.

Andersen, L. B., Danholt, P., Halskov, K., Hansen, N. B., & Lauritsen, P. (2015). Participation as a matter of concern in participatory design. CoDesign, 11(3-4), 250-261.

Jasanoff, S. (2004). Science and citizenship: a new synergy. Science and public policy, 31(2), 90-94.

Irwin, A. (2006). The politics of talk: coming to terms with the ‘new’scientific governance. Social studies of science, 36(2), 299-320.

Kelty, C. M. (2017). Too much democracy in all the wrong places: toward a grammar of participation. Current Anthropology, 58(S15), S77-S90.

Irwin, A., Jensen, T. E., & Jones, K. E. (2013). The good, the bad and the perfect: Criticizing engagement practice. Social Studies of Science, 43(1), 11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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