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은 2:8-20
몇 주 만에 글을 쓴다.
바빳다면 바빳고, 그렇지 않았다면 않았을.
사실 딱히 글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시간이었다.
아마도 게으름의 문제였겠지.
어릴 적 설렜던 성탄의 기쁨이 무뎌지는 세월을 보내며,
다시금 성탄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그 밤, 천사들이 그리스도 구주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전하고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고
천사들에게 들은 기쁜 소식을 전하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19)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마리아가 마음에 새겼던 말들은 무엇이었나
"천사들이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너희에게 표적이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10-14)
매 해 마다 들었던 이 말씀들 중에 이번엔 유독 마리아의 반응이 새롭게 다가왔다.
treasure는 보물처럼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다는 의미이고, ponder는 깊이 생각하다는 의미이지만 그 어원이 weight(무게)이므로 그 생각에 큰 추를 달아 무게감을 둔다는 의미일테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말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였고, 그 보물이 지니는 무게감을 깊이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은혜,
그 은혜를 위해 기꺼이 비방을 받고 칼에 찔리는 표적으로 세움받은 예수님.
나는 얼마나 이 은혜를 깊이 마음에 새기고 있나.
나는 얼마나 이 은혜의 무게감을 깊이 느끼고 있나.
내가 느끼는 성탄의 순수한 기쁨은 내가 얼마나 그 무게를 절실히 깨닫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다.
시대의 상식과 질서를 뛰어넘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몸으로 받았던 마리아는,
그 무게를 느끼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짊어져야 했던 죄의 무게를. 그 무게를 절실히 깨닫는 자에게 진실하고 순수한 기쁨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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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깨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