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은

꼭 6월에!

by Chabu

오늘 일정은 내 욕심과 효도상품의 결합이다.

지베르니 정원과 고흐 마을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

엄빠는 베르사유 궁전은 가보고 싶다고 하셨고

나는 모네와 고흐가 눈으로 보고 그린 곳들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여름동안만 개방한다는 지베르니 정원은 6월이 절정인 듯하다.

나무는 짙은 초록이었고 꽃들은 자신의 시기를 맞춰 피고 지고 있었다.

지는 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지 각색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발산 중이었다.

모네가 이 집에 사는 동안 정원 가꾸는데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는데 사실이구나.

모든 것이 만발해서 마치 커다란 꽃다발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꽃의 색이며 꽃이 위치한 자리 피고 지는 시기가 모두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식집사 예술가의 만개한 정원.


자신이 그릴 그림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다리도 만들고 수련도 놓고

수련 뒤에 보이는 나무의 키도 생각하고

세심한 계획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의 결과인지

지베르니는 그 어떤 정원보다

자연스럽지만 또 풍성했다.


방문 시기도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6월의 식물을 가장 빛나게 반짝 거린다.


아빠 엄마는 처음 보는 다양한 서양꽃을 향해 연신 핸드폰을 들이댔다.

아빠는 자신의 다짐을 말한다.


"나는 우리 손녀랑 여기서 사진 한 장 자~알 찍어서 카톡 사진에 올린란다!"


꽃이 만발한 자리만 나오면 아빠가 핸드폰을 나에게 건넸다.

사진을 찍을수록 둘째의 미소가 어색해지고 있다.

초조하다. 저 미소가 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아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오후에는 반고흐가 생애 마지막에 머문 마을 오베르슈흐와즈를 들렸다.

조용하고 자그마한 마을이다.

따가운 여름 오후 햇살 아래 할머니가 양산을 펼쳐 둘째를 양산 아래로 부른다.

"이리온나~ 할머니 양산 밑으로 들어온나. 너무 뜨거워서 안된다."


고흐가 그렸던 교회도 밀밭도

고흐가 바라보던 그때보다 많이 바뀐 것 없을 거 같은데

내 눈에 보이는 건 한국의 시골과 하나 다를 게 없다.

고흐의 다른 그림은 뭔가 다른 풍경을 보고 그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밭에 교회라니 예술가의 눈이 부러웠다.


별것 없는 풍경에 아이들은 여기가 어디던

고흐가 그렸든 말든 상관도 없다는 얼굴이다.

따가운 햇빛에 찌푸린 얼굴은

당장에 이 그늘 하나 없는 밭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할머니의 양산도 소용이 없나 보다.


자, 이제 마지막 효도 상품 코스다.

베르사유는 화려해도 너무 화려했다. 그동안 방문했던 궁전 중에 화려하기로 일등이다.

사람들이 베르사유 베르사유 하는데 이유가 있구나.


나오는 길에 아빠는 핸드폰에 꽂아 두었던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뭐? 아빠 카드도 안 쓰고 핸드폰도 안 썼잖아요? 왜 갑자기 여기서??"

라고 하는데 어디선가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내 말을 가로챈다.

바로 따라오는 엄마의 잔소리.

문득 아빠 얼굴을 보니 한 달 용돈 든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중학생 같은 얼굴이다.


다다다다 엄마의 속사포를 끊기 위해

빨리 카드정지 하는 게 지금 할 일이라고 말한 뒤 슬쩍 자리를 피했다.

이번에도 엄마의 기세가 등등하다.


나는 얼른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적당히 앞서갔다.

함께 여행하면서 알게 된 건 지금 엄빠 사이는

내가 말리려고 해서 말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까지 인가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싶어서 다시 보면

이미 끝나 있다.


"엄마, 할아버지 왜 할머니한테 혼나?"

"아냐 혼나는 거 아냐. 여행 와서 쓰려고 가져오신 카드가 없어졌데."

"그럼 어떡해. 우리 돈 없어?"

"아냐 있어 ㅎㅎ."

"아~"


애들도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티키타카를 안다.

그저 조금 떨어져 걷다가 투어차량에 타면 이미 다 끝나있을 레퍼토리라는 걸.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