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마지막 밤
어제는 진짜 수련을 오늘은 그림으로.
오랑주리 미술관 중앙부 타원형 전시실에 수련 연작이 벽마다 걸려있다.
엄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 모네의 수련이란다.
이렇게 엄마에 대해서 또 하나 알게 되네.
엄마와 살짝 떨어져 그림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어제 본 연못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순간 주변이 고요해진다.
6월의 파리는 무척 더웠다.
오후 일정이 몽마르트 언덕 야외 투어가 둘째가 걱정이 되었다.
둘째의 입이 삐죽 나오면 바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여야겠다.
푸니쿨라가 사람들을 가득가득 태우고 몽마르트 언덕으로 올라갔다.
간혹 언덕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참을 수 있는 더위였지만 둘째에겐 무리인가 보다.
가이드님의 설명도 다 듣지 못하고 자긴 저기 나무밑에 가야겠다고 선언했다.
양 볼이 빨갛다. 둘러보니 다행히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당장 아이스크림 가게로 직진해야지.
언덕을 내려가면서도 둘째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지만 아무것도 듣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내려가는 길에 다시 주어진 자유시간에
우리는 예술가들이 단골로 찾았다는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아빠가 말했다.
"술을 한잔 먹어야겠다. 시원한 칵테일 같은 거 없나?"
우리는 각자 얼음이 들어간 음료를 시키고 앉아서 더위를 식혔다.
내려오는 길에 가이드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이야기했다.
"이 빵집이 올해의 바게트 대회에서 우승한 곳이에요."
엄마의 눈이 반짝.
엄마는 바게트를 여러 개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먹고 저녁에도 혹시 호텔에서 배고프면 먹고
내일도 아침으로 바게트를 먹으면 된단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번에 여행 와서 빵을 실컷 먹을라고 결심하고 왔잖아. 호호호"
좀 출출하지 않냐며 당장에 바게트를 한 조각씩 권하는 엄마 덕분에
우리 손엔 바게트가 한 조각씩 들렸다. 더위 때문에 빵이 먹히진 않을 거 같은데 억지로 한입 먹었다.
오! 진짜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진짜다. 입천장이 까지지 않는 바삭함이다.
프랑스에서 먹는 바게트는 사실 어디서든 맛났는데 여긴 그중에서도 최고다.
그래 역시 상 탄 바게트집은 또 다르구나.
숙소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코를 고는 할아버지 덕분에
아직 9시도 안 되었는데 자지도 못하고 호텔방에 있자니 시끄럽고
"얘들아 여기 호텔 앞에서 에펠탑 보이던데 사진이나 찍고 올래?"
"그래. 너네 나갔다 와라. 아빠 더 깊이 잠들면 코 안 골 거다."
"엄마는?"
"나도 피곤하다. 너네끼리 갔다 와라."
들어오는 길에 로비에서 본 게임기에 꽂힌 애들이 좋다며 얼른 나가자고 재촉한다.
그래. 나가자.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남겨보자.
보자... 에펠탑 야경 사진이 쓸만한 게 있었는데...
브런치에 올리려고 사진을 찾고 있는 내 옆으로 둘째가 다가왔다.
"엄마 머 해?"
"아. 너 이거 볼래? 아까 나 혼자 보다가 웃겨가지고. ㅎㅎㅎ"
"어? 엄마, 나 이사진에 왜 이렇게 화났어?"
"그런데 이거 봐라?"
"어? 여긴 화 풀렸네?"
"생각 안 나? 너 너무 더워서 화났었잖아.ㅎㅎ"
"이 사진은 아이스크림 먹고 난 이후야.ㅎㅎ."
"아~ 맞아. 엄마, 나 저 때 엄마가 입에 뭘 넣어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었어.ㅎㅎ"
우리 둘은 몽마르트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낄낄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