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스테드 공항 - 스테스테드 익스프레스로 시내 진입 - 런던 타워 입장- 빅버스 타고 시내 관광
체크포인트
오이스터 카드 다회권 구입
런던 패스로 런던타워 입장, 빅버스 탑승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에서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까지 비행시간 2시간 25분. 난생처음 듣는 공항에 대해서 검색해 봤다. 스텐스테드 공항은 런던 북동쪽에 위치하고 유럽 내 저가 항공사가 주로 이용한다. 저가 항공사가 주로 이용하는 공항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난 여행 마지막날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여튼 9시 30분,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드디어 여행의 시작. 일단 공항에서 리버풀 스트리트역까지 가는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 기차표를 사야 한다. 출국장으로 가는 길에 왕복 기차표를 판매하는 부스가 보였다. 기차표를 사고 출국장으로 나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오느라 배가 고플 아이들에게 샌드위치와 음료를 하나씩 사 먹였다. 일단 배를 채워야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걸어 다닐 힘이 날 테니.
이번 여행의 짐은 각자 들기로 했다. 여행기간이 6일이라 짐이 생각보다 많고 엄마 혼자서 셋의 짐을 들고 다니기는 무리다. 한국에서 올 때 여행을 염두에 두고 각자 원하는 캐리어를 구매해서 왔기 때문에 옷가지만 챙겨 주고 나머지 짐은 아이들이 알아서 챙겼다. 11살 아들, 9살 딸은 여행의 필수품으로 엄마는 가져가지 못하게 할 품목들을 꼽았다. 아들은 노트북 필수이고 딸은 작은 인형이며 팝잇을 챙겼다. 그렇게 가져온 짐은 캐리어 세 개와 배낭 세 개다.
아이들이 요기를 하는 동안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챙겼다. 먼저 런던 북동쪽 공항에서 런던 동쪽에 위치한 리버풀 스트리트 역으로 간다. 런던 동쪽 시티& 뱅크 구역에 위치한 런던 타워를 구경하고, 근처에 정차하는 2층 관광버스인 빅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본다. 그리고 숙소와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려서 체크인을 한다. 숙소 근처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는다. 이 정도는 소화할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이 꽤나 컸으니까.
배를 채운 아이들이 기분 좋게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행했다. 공항을 나와 지하로 연결된 기차역은 걸어서 멀지 않았다. 공항밖으로 나오자 후끈 후덥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덮쳤다. 스웨덴은 6월 중순에도 아침저녁으론 선선하고 낮은 적당히 활동하기 좋은 날씨라 우리의 옷차림은 스웨덴 여름에 맞춰져 있었다. 게다가 스톡홀름과 런던의 기온차가 크지 않아서 출발할 때는 선선한 아침 기온에 맞춰 옷을 입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체감이 다른 기온이었다. 스톡홀름보다 살짝 덥겠지 했던 런던은 오히려 서울의 6월 말 날씨 같았다. 아이들 잔머리 옆으로 땀이 살짝 스며 나오는 게 보인다.
기차는 붐비지 않았고 여유로웠다. 가운데 테이블까지 있는 좌석을 찾아 셋이 마주 보고 앉았다. 기차가 10 분 정도 정차하다 드디어 출발했다. 창밖으로 초록덤불과 드문드문한 갈색 주택을 반복하는 풍경을 뒤로하며 달렸다. 건물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갈색 벽돌에 길쭉한 창문이 다닥다닥 붙은 5층 이상 건물들이 주르륵 이어지더니 드디어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 도착했다.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기간 동안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오이스터 카드 6일권을 구입했다. 이 교통권은 첫째는 어른권보다 할인된 가격에 둘째는 9살이라 카드보증금만 내고 구입한 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오이스터 카드를 개시하고 타워 힐 역으로 향했다.
우리 숙소는 런던 남쪽에 위치한 오발역 근처다. 캐리어를 숙소에 두고 다시 나오면 저녁 먹을 시간에 가까웠다. 하루를 이동에만 날릴 거 같아 리버풀 근처 타워 힐을 들렀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런던 타워에서만 잠깐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 빅버스에 앉아서 시내구경을 하고 숙소로 가면 되겠다. 그래도 혹시나 지하철역에 캐리어 보관라커가 있으면 넣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타워 힐 역을 빠져나와있었다. 길건너에 런던타워가 보였고 저기 저 이층 버스가 정차해 있는 곳이 빅버스 정류장이겠구나.
오늘 일정인 런던 타워와 빅버스는 일정 계획할 때 구입한 런던패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 패스는 런던의 관광지들을 여러 곳 무료로 입장하거나 싸게 입장할 수 있는 상품이다. 런던패스를 보여주면 개시한 당일 하루동안 빅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런던 타워 한 군데는 캐리어를 끌고도 구경할 수 있겠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 반으로 아이들을 돌아봤다. 애들 얼굴이 찌푸려져 있다. 너무 더워서 바지를 갈아입고 싶단다. 아,, 그래 많이 덥지? 엄마도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어. 내일부턴 반바지 입자. 오늘만 참아봐.
이래 저래 달래서 길을 건넜는데 아뿔싸! 바닥이 캐리어를 끌기엔 적합하지 않다. 유럽 바닥은 왜 이 네모난 돌을 박아서 만들었을까. 분명 공항에선 캐리어를 잘 끌던 아이들이 힘들다고 한 마디씩 했다. 모른척하고 전진했다. 여기만 견디면 된다. 입구를 찾자. 런던 타워 왼쪽으로 매표소 줄은 좀 있었지만 런던패스는 큐알코드만 보여주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눈앞에 찾아지는 대로 발을 움직였더니 이네 우리 셋은 출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가방 검사를 한다.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다시 한번 캐리어를 어디 맡겼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런던 타워 안이었다. 중세에 지어진 건물답게 바닥 돌 틈이 광장에 돌들보다 더 컸다. 캐리어 바퀴가 잘 끌리지 않았다. 둘째는 2미터마다 멈춰서 쉬고 있었다. 첫째는 어떻게든 달래서 틈이 좀 적은 인도 쪽으로 캐리어를 끌어보라고 권했다. 런던 타워는 화이트 타워 앞에서 사진을 찍고 거기 있는 까마귀도 봐야 해. 하지만 화이트 타워로 가는 길은 경사가 있었고 캐리어를 끌고 겨우 화이트 타워 앞에 도착한 우리는 지쳐버렸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는데 이 얼기설기한 돌바닥은 연신 캐리어 바퀴가 끼여서 1미터를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날은 생각보다 더웠서 우리는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원래는 왕실의 보물관을 볼 계획이였으나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화이트타워 앞에 어떻게든 아이들을 세웠다. 사진 한 장 찍고 일단 후퇴. 더워하는 아이들에게 바로 옆에 보이는 기념품 샵에 들어가라고 했다. 거긴 에어컨이 나올 거야. 아이들을 넣고 캐리어 세 개와 밖에 서 있었다. 둘은 한결 나아진 얼굴로 다 둘러봤다며 5분도 안 돼서 나왔다.
"엄마. 이제 나가자."
"음? 나가자고? 뭘 거의 못 봤는데... 그럼너무 더우니까 바로 옆에 블러드타워만 보고 나가자. 거긴 실내야."
영국 왕실의 굴곡진 역사를 가진 곳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었다. 형제들끼리의 암투와 처형등이 기록된 장소임을 알려주려고 이것저것 이야기해 봤지만 아이들은 그저 지친 얼굴이었다. 그런데 저런. 타워 가까이 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블러드 타워는 둘러보고 가야 한다. 나는 둘째 캐리어까지 양손에 들었다. 캐리어에서 홀가분해진 둘째는 기운이 났나 보다. 여유가 생겼는지 두리번거리다 한국 사람들을 보고 인사를 한다. 둘째와 동갑이 아이가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담소를 나누기엔 너무 힘들었다. 캐리어를 두 개나 든 나에게 그 엄마가 좀 도와 드릴까요 물어보셨지만 괜찮다며 사양했다. 안쓰러운 얼굴을 뒤로하고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내려갔다. 계단은 좁고 소라고둥처럼 둥글게 둥글게 내려갔다. 드디어 다다른 곳엔 고문장치가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 고문을 당하는 자는 바로 나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단시간에 매우 지친 상태로 화이트타워와 블러디타워만 구경한 후 런던 타워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가까운 출입구가 보이길래 냉큼 나와서 보니 웬걸 바로 눈앞에 타워브리지가 보였다. 힘든 것도 잊은 채 난생처음 런던에 온 나는 짠하고 펼쳐진 타워브리지가 반가워서 아이들을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좋은 포토존이 있나 싶어 조금 더 잘 찍어보려고 가로 세로 돌려가며 사진 찍는 엄마에게 아이들이 말했다.
"사진 좀 그만 찍으면 안 돼요? 배고파요."
"그, 그래,, 점심을 먹을까?."
시간이 2시가 한참 지났다. 강가에 푸드 트럭과 노상 카페에 자리를 잡고 햄버거를 사 왔다. 세 시간에 한 번씩은 먹여야겠다. 햄버거를 입에 넣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배가 고팠는지 햄버거를 뚝딱 해치운 후 둘째가 옆에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한다. 그래 시원하게 아이스크림도 먹자. 이렇게 더울 줄이야. 햄버거에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은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자, 이제 우린 빅버스를 타고 시내를 구경할 거야. 런던 하면 2층 버스지. 가자!"
"어디서 타는데??"
"아까 보니 길건너에 관광버스가 있었어. 타러 가자."
"뭐?? 또 저기까지 걸어야 해??"
"버스만 타면 앉아서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잖아. 저기까지만 걸으면 끝이야. 가자. 일어나!"
드륵드륵드르륵 드르르륵, 셋은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빅버스에 탑승했다. 런던의 상징 이층 버스. 일단 2층으로 올라갔다. 앞쪽에 자리를 잡고 나눠주는 이어폰을 꽂았다. 비틀스의 나라답게 옐로 서브마린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눈이 부시긴 했지만 버스가 속력을 내자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명소를 지나칠 때마다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고 한껏 흥이 오른 성우가 영어로 설명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 둘 다 동영상과 사진 찍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관광객다운 모습이었다. 나도 한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런던은 대도시였다. 템즈강변을 따라 높은 건물을 짓는 공사장, 유람선을 타고 내리는 많은 관광객들, 시내로 갈수록 늘어나는 차량들, 잠시 런던이 서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대도시의 분주함에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뒷자리에서 큰아이가 말했다. 빅벤이다.
중학교 때 영어책에 흑백으로 나오던 빅벤을 드디어 실물로 보는구나. 내리쬐는 햇볕에 빅벤은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줄줄이 지나치는 관광지들. 국회 의사당, 웨스트 민스터 사원을 지나 웰링턴 아치를 끼고돌아 하이드 파크를 옆으로 하고 헤로스 백화점이 있는 쇼핑거리로 들어섰다. 갑자기 버스가 정차하더니 앞 버스로 옮겨 타라는 안내가 나왔다. 아이들이 2층 너무 뜨겁다고 이제 1층에 앉고 싶다고 했다. 좁은 시내 길은 복잡했고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얼굴은 땀이 흘렀다 말라서를 반복해서인지 꾀죄죄했고 눈은 게슴츠레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안 되겠다. 그냥 여기서 내려야겠다. 쇼핑거리를 지나와 웰링턴 아치를 다시 돌아 다른 경로로 들어서기 전에 아이들을 깨워서 내렸다. 숙소로 가자. 지하철을 타고 드디어 숙소가 위치한 오발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살짝 떨어진 주택가라 거리가 한산했다. 조용하고 바람 솔솔 부는 곳에 오자 조금 여유로워졌다. 숙소가 역이랑 가까워서 아침마다 지하철 타러 가기에 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길에 편의점도 있어서 매일 출발할 때 물은 여기서 사자며 셋이서 쫑알댔다.
드디어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파트먼트로 호텔이랑 다르게 숙소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쇠를 받아야 했다. 비밀번호를 돌려가며 맞추는 건 알겠는데 도통 키가 어디 있는지는 찾지를 못하고 있었다. 공동 현관 앞에서 이걸 어떻게 하는 거지라며 이리저리 돌려봐도 열리지 않아서 난감하던 차에 '타닥' 첫째가 열쇠통을 열고 열쇠를 찾았다. 키패드 옆 초인종 있는 자리에 있던 박스에 열쇠가 들어있었다. 여봐라. 도움 되는 친구구먼.
숙소에 들어서자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창문을 열고 숙소를 둘러봤다. 방 하나에 작은 부엌 딸린 거실, 소파, 적당한 크기의 화장실. 셋이 지내기엔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침대가 더블침대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하나가 소파베드라 생각했는데 그냥 소파였다. 난감해하는 엄마를 보더니 첫째가 한마디 한다.
"엄마 내가 소파에서 잘게."
감동할 뻔하는 순간 첫째가 다시 말한다.
"엄마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뭐야?"
그렇게 우리 셋은 짐도 풀기 전에 각자 와이파이부터 먼저 연결했다. 첫째는 노트북 게임을 둘째는 유튜브를 봤다. 각자 할 일에 몰입한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오랜만에 대도시 소음과 하루종일 엄마. 여기 어디야, 언제가, 이제 뭐 해, 더워, 그만 걸을래, 도돌이표 노래에 시달리던 귓가가 조용해졌다. 나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래봐야 저녁 메뉴 검색이지만, 오기 전에 대충 보아둔 저녁 먹을 곳을 다시 한번 검색한다. 결정했어. 오늘 저녁은 피시 앤 칩스다. 모퉁이만 돌면 있는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어야지.
"얘들아~ 이제 그만하고 피시 앤 칩스 사러 가자~"
"뭐?? 또 나가야 해??"
"아니... 바로 옆이야... 모퉁이만 돌면 된다구."
변명하듯 줄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생각했다. 오늘은 겨우 첫째 날이야... 툴툴거리는 초딩 두 명을 데리고 나가서 피시 바 앞에서 주문하고 기다렸다. 아까의 힘든 일은 다 잊은 듯 둘이서 장난치며 낄낄댄다. 금세 기운을 충전한 아이들은 주택가 골목길을 둘러보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한다. 웃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 다시 한번 사진을 찍어 본다.